1999년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즉, 공익 목적의 토지재산권 제약에 대해 손실보상규정을 두지 않고 장기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의 재산권 보장과 정당보상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불일치 판정이 그것이다. 이에 정부는 2001년 법 개정을 통해 10년이 경과한 도시계획시설을 장기미집행시설로 분류하고 실효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장기미집행시설에 대해 집행을 추진하거나 불필요한 시설은 해제토록 하고, 결정된 뒤 20년이 지나도 시행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실효되는 일몰제를 도입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일몰제 적용(2020년 7월 1일)에 맞춰 장기미집행시설에 대해 현실과 문제점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길을 모색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10년 이상 장기미집행시설은 전국적으로 931㎢(대전시 면적의 1.7배)로 추정사업비만 약 202조 원 정도 소요되고, 이를 전국 지자체가 집행하는 관련예산을 기준으로 하면 향후 10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3년 반이 지나면 자동 실효되는 장기미집행시설은 826㎢로 전체 면적의 89%를 차지한다. 대전시만 하더라도 재정사업으로 해소해야 할 장기미집행시설 면적은 약 13㎢로 사업비가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볼 때 장기미집행시설의 완전한 집행과 해소는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인 개선은 물론, 도시계획시설이 갖는 기능과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풀 수 있는 다양한 도시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도시에 있어서 도시계획시설은 도시구조의 골격을 형성하고 시민에게 필요한 기반시설을 만들어줌으로써 도시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데 일조해왔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성장과 개발을 전제로 목표인구를 정책적으로 높게 추정해왔고, 그 결과 도시계획시설 역시 과다하게 지정된 부분이 있다. 예컨대 도시의 골격과 교통체계와는 무관하게 도로가 지정됐고, 시민의 이용권, 생활권 등 도시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적 기준과 계획지표에 따라 공원을 확보하다 보니 개발이 쉽지 않은 양호한 산지를 대상으로 상당한 면적을 공원으로 지정해왔다. 좋은 의도로 도시계획시설을 지정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도로개설과 공원조성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실제로 집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집행시설로 남음으로써 `공공복리 증진과 시민 삶의 질 개선`과 `도시구조의 골격 및 체계 형성`이라는 도시계획시설의 설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방정부에서는 가용재원을 전부 투자해도 장기미집행시설에 소요되는 사업비를 조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미집행시설에 대한 매수청구권 제도가 도입됐고, 이와 관련해서 도시계획시설채권, 도시개발특별회계의 설치·운영 등이 제도화됐으나 이 또한 시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장기미집행시설의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들어 도시계획시설을 입지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이용권·생활권·경제권 등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지속가능한 도시를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원·학교·도서관·공공청사 등은 개별입지에서 벗어나 기능과 시설의 복합화, 공공과 민간의 공동 활용, 부대·편익시설의 확대 등을 통해 이용자 중심의 수요와 필요성을 검토하고, 공공 재정투자 없이 설치·운영이 가능한 비재정적 집행수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공원만 해도 그렇다. 가용재원 등 여러 이유로 공원을 조성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별 다른 대안 없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난 2015년에 도입된 공원 특례사업제도는 그 대안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공원특례사업은 5만㎡ 이상이 되는 미집행 공원시설을 대상으로 민간자본을 활용 70% 이상은 공원시설로 조성하고 훼손으로 인해 공원으로써의 활용가치가 떨어지거나 공원의 역할을 발휘하기 어려운 지역은 비공원시설로 정비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공원 면적의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도시기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공원을 제대로 조성함으로써 시민들의 이용이 활성화되고 시민들이 휴식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원의 주 기능은 바라만 보는 것에 한정하지는 않는다. 시민이 쉽게 접근해서 이용하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써 휴식처의 기능도 함께해야 한다. 공원특례사업은 이런 부분을 채워주면서 장기미집행시설도 해소할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얻을 수 있는 도시계획적 방안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려면 비공원시설에 들어가는 기능은 공원시설과 상충되지 않아야 하고, 그 기능을 담을 수 있는 도로 등의 기반시설이 충분해야 되며, 경관과 환경 측면에서도 조화로움과 부정적인 영향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이상만을 꿈꾸는 도시계획은 눈에 보이지 않는 최선의 길일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사람이 불편해하는 것을 해소하는 도시계획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최적의 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장기미집행시설의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적극 노력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밝혀둔다.

신성호 대전시 도시주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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