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모조리 살 처분했는데 이제 걸릴 닭도 닭장에 없으니 더 이상 번질게 있나요" 천안에 10여일 째 AI 의심신고접수가 발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한 가금류 농장주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하는 푸념이다. 이 농장주는 이어 "매년 정부는 방역연구에 나섰다고 하는데 10년 내내 대응방법이 똑같다니까요…이젠 기대도 안해요."라며 혀를 찼다.

그 농장주의 말마따나 천안지역은 한달 째 AI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불과 2개월 사이 3000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떼죽음을 당했으니 말이다. 충남에서는 천안이 가장 피해규모가 컸다. 천안지역 가금류 사육수인 760만 마리 중 절반이 훨씬 넘는 475만 마리가 살 처분 됐다. 충남도 가축위생연구소는 "충남의 AI피해규모는 곧 천안의 피해규모"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의 피해규모를 넘어섰다. 사상 최악의 AI사태로 기록된 것이다.

경제계에도 영향이 미쳤다. 산란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급량이 감소돼 계란 가격이 폭등했다. 계란은 지난 설 명절 선물로 등극할 정도로 귀한 몸이 됐다.

AI 농가의 비명 속에 AI가 발생하지 않은 농가들은 반사이익을 올리는 상황이 초래하고 있다. AI 발병농가들이 초상집 분위기인 반면 AI가 발생되지 않은 가금류 농가들은 표정관리를 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농가 보상금, 육류·육가공업 등 산업에 미치는 사회적 비용을 합치면 피해규모가 1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비난의 화살은 정부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항의와 대응도 연례화로 되풀이하듯 무심한 반응뿐이다. `늑장대응`, `컨트롤타워의 부재`라는 비난에도 묵묵부답이다. 되려 피해만 커지고 있다. 답답한 것은 지자체다. 천안시도 정부의 지침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아산시와 공동으로 자체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이젠 정부의 컨트롤타워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농장주들의 한숨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AI피해현장에서 만난 한 농장주는 보상이라도 받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재작년에도 그랬단다. 천안지역 가금류 농장주들은 겨울철 마다 불청객을 13년째 맞이하고 있다. 농가도, 지자체도, 정부도 이젠 연례행사로 취급하고 있다. 다들 만성(慢性)이 돼가는 중이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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