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

육근상 시집 `만개`
육근상 시집 `만개`
`긍게 말시 내가 이 집 츰으로 발 딜여놨을 때 느 아부지 돌 지나 아부지 잃고 시 살에 엄니 개가 허여 열여덟 될 때까지 넘으 집으루만 떠돌다 거적때기로 가린 변소간에서 나오고 있더란 말시 온 세상 잡초는 여 손바닥만 헌 마당이다 짐 풀었는지 죄 얼크러져 구신(鬼神)이 놀다간 자리 같더란 말시 그 때 내 나이 스물잉게 뭘 알어 뱀 나올까 무서워 뒤로 안 돌아 보고 줄행랑 쳤더니 (하략)` (쉰일곱이로되 중에서)

대전 출신 시인 육근상이 2013년 시집 `절창` 이후 3년 만에 `만개`를 출간했다. 시집 `만개`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그득히 담겨 있다. 사람 냄새도 물씬 난다.

육 시인은 "대전 출신이다 보니 충청도 사투리를 알려보는 게 어떨까 해서 시에 담았다"면서 "그러면서 제 주변의 상황들, 개인적 이야기는 물론 고향 주변 이들,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시집 출간 의미를 설명했다.

육 시인의 고향은 대전 동구 추동이다. 이 마을은 대청댐 건설로 논과 밭 등 대부분이 수몰된 곳. 육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기 위해 지난 3년 간 대청호 주변 마을인 충북 옥천 근방과 대전 내탑마을 등 수몰지구, 대청댐 근교 등의 주민들을 만났다. 그는 `수몰 지역`이라는 의미를 비단 마을이 잠겼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 어찌어찌하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떠밀린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집 `만개`는 역설적이다.

육 시인은 "소외된 이들은 삶이 힘들어서 그렇지 살아가는 건 큰 지장이 없다"며 "소외된 가운데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풀꽃도 활짝 피는 것처럼,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나름 생활 속에서 활짝 피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육 시인은 그의 혈육과 인척, 그리고 이웃사촌들의 삶에 배어 있는 가난과 슬픔, 연민과 인정을 땀 냄새 나는 고향의 기층 언어로 생생히 복원해 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금방이라도 고향 사람들이 일제히 활자 밖으로 튀어 나와 웅성거릴 것만 같다.

그의 시집에는 대전 옛 지명도 자주 등장한다. 동구 신상동의 옛 고개 이름인 `애개미 고개`나 추동의 옛 지명인 `가래울`은 물론 `아래께`, `퍼니기` 같은 토속어들도 담겨 있다.

그가 재구해 낸, 사물의 이름에 붙은 충청도 토착어가 이렇게 아름답고 정감 넘칠 줄이야.

그는 시에 `소리시`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육 시인은 "이번 시집에 담으려고 했던 게 `소리시`라는 것인데 이는 소리를 가지고 시를 쓰려고 하는, 말소리라는 것으로 말 나오는 대로 하면 대화가 될 수도, 소설이나 수필이 될 수 있다"면서 "소리시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접목시켜 시를 써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시 가운데 `불목하니 임 처사 전 상서`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많은 독자분들이 봤으면 하는 건 `만개`라는 시편이고 개인적으로 문학적 소득을 내려고 한 건 `불목하니 임 처사 전 상서`입니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고 소리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난 육 시인은 1979년 대학입시의 실패와 터전의 수몰로 인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빠지면서 대청호 주변을 떠돌기 시작했는데, 이 때 우연히 한국전쟁 실향민 거주지인 천개동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시와 첫 인연을 맺었다. 1991년 `삶의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13년 시집 `절창`을 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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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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