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케미란 말이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다.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에서 뭔가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할 때 잘 쓰이는 케미는 케미스트리(화학)을 줄인 것이다. 왜 뜬금없이 화학이 대중의 대화에 끼어들어 오게 된 것일까. 아마도 물리적 변화에 대응되는 화학적 변화로부터 연유된 것은 아닐까. 보통 물리적 변화는 물성은 변하지만 물질의 구조나 조성에는 변화가 없는 반면에 화학적 변화는 물질 구조나 조성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간단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자면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수학과 물리는 자연현상이나 물질 자체 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학이나 물리는 풍경화처럼 감상할 수 있는 객체로써 존재한다. 우주 원리나 소립자처럼 그 수식이 복잡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피와 땀이 섞이는 현장에서 고고하게 떨어져 있다(실재로는 그렇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처럼 연필 한 자루만 들고 오랫동안 숙고하여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고 어려운 수식을 풀어서 마침내 그 이론을 완성하고, 뉴튼처럼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이론의 힌트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대중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물리학의 모습이다.

지금까지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은 마치 신화 속 그림과 비슷하다. 우리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문가들 말의 향연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져 왔던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우리생활이 첨단 기기들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우리들이 그 골치 아픈 이론을 파고들어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데 필요한 것은 베르누이 양력이나 제트엔진의 작용 반작용 법칙이 아니라 표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이다. 자동차나 스마트 폰, 인터넷망을 쓰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돈이지 기술의 원리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는데 점점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더 바쁘게 일해야 하기는 하지만 작동에 필요한 배경 이론이나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다. 간추려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소비자들과 가까이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말하자면 엄정한 객체일 뿐이다.

화학은 어떤가. 화학도 자연과학이므로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법칙과 부호에 감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몸 자체가 화학물질들 조합이며, 우리가 매일 먹고 쓰고 바르는 물질 자체가 화학물질이다. 화학은 냄새와 촉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상세한 분자구조를 알리는 없지만 냄새인자들이 작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강한 냄새를 풍기는 물질들은 매우 작은 분자들이 대부분이다. 큰 분자들은 액체나 심지어는 고체가 되어버려 우리 코까지 전달되기 어려운 반면에 작고 기화되기 쉬운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 쉽게 공기 중에 퍼져서 냄새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분전환을 위하여 인류가 제일 많이 마시고 있는 술의 주성분은 탄소 2개 산소 1개 수소 6개의 분자인 에탄올이며, 우리를 환각상태로 이끄는 마약류와 각성제 카페인, 뇌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과 도파민, 미량으로도 인간을 조종하는 호르몬 등도 작은 화학분자일 뿐이다.

주변에 늘 있으며 날마다 우리가 먹고 바르고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 물질들은 설령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직접적으로 우리 삶 자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더구나 개인이 매일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총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케미라는 말을 무슨 의미로 사용하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상호간 접촉이 늘어나 사생활에 직접적인 공통분모가 생겨나는 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럴 때 우리가 모르고 있더라도, 감정에 서로 영향을 주어서 몸속의 화학물질(케미)인 뇌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분비 등에 서로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의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끼리의 정서적인 대화와 땀 냄새, 부드러운 스킨십을 공유하는 인간관계, 즉 케미를 더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전동주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소기업 (주)켐스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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