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 연휴가 시작됐다. 고향집에서 오랜만에 부모형제를 만나면 한편으론 무척 반가우면서도 애잔하며 가슴 한켠이 아려오기도 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이 올라온다. 핏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영역에 속하는 현상이다.

부산하게 음식상을 차리고 차례상을 준비하며 밀린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정치얘기도 빠질 수 없다. 더욱이 올해는 국정농단 사태로 남녀노소, 지위고하 가릴 것 없이 온통 정치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상황. 부모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설득이 안 돼 절대로 화젯거리로 꺼내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부모, 웃어른들이 계속 말을 꺼낸다면 대꾸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반갑고 애잔한 감정은 수그러들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지만, 정치만큼 중요한 변화가 올해부터 시작된다. 올해부터 우리나라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생산가능인구는 만 15세에서 64세까지의 연령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연령층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경제활동을 한다. 소득이 있는 연령층의 절대숫자가 줄기 시작하므로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어들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며 경제의 활력이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올해나 내년정도는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해 약 30만 명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3년 뒤, 2020년부터다. 한해 30만 명의 감소가 어느 정도 악영향을 불러오고 변화를 초래할지 짐작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작년 11월 치러진 2017년도 수능시험 응시인원이 약 55만 명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금세 실감이 날 것이다. 전국의 대학 절반을 채울 수 있는 인구가 갑자기 사라진 듯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생산가능인구 상당수가 가장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00만 명에 가까운 소비층이 일시에 사라지는 듯한 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주택, 자동차 등을 비롯한 소비 영역 등 경제 전반에서 일시에 빠져나가는 썰물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에다, 생산가능인구정도가 아니라 총인구가 감소하는 중인 일본보다도 속도가 빠르다는 고령화 현상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출산율 최저, 고령화 심화 현상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몰고 올 현상에 가속도를 더할 것이다. 이른바 인구절벽이 코앞에 닥쳤다는 얘기다.

이 같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바뀌고 달라진 소비구조와 경제구조에 적응해 새로운 소비패턴, 라이프스타일이 생성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64년 전 끝난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사회에서 살아왔지, 줄어든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인구 감소가 어떤 것인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험은 물론 상상을 해본 이들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방식은 물론 정책, 사회적 상규 모두 인구증가를 전제로 하고 또 그 속에 형성돼 온 것들만 존재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불러올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대응이 몸에 밸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의 의식과 문화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곧바로 따라잡은 예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통계는 이처럼 두려운 현상을 반복적으로 예고하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의미있게 바라보거나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겪고 싶지 않은 예고이다 보니 애써 외면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에 일부이지만 보수적인 학자들조차 과감한 이민개방을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만 명에 다다랐다는 외국인노동자들도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여전한 판에 이민에 대한 문호 개방 문제를 놓고 진지한 사회적 토론이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해답이 없는 건 아니다. 대안은 이미 제시돼 있다. 결혼, 출산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청년층에게 마음놓고 결혼과 출산,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구조,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80조 원이 넘는 관련예산을 쏟아부어 왔지만, 청년층의 생각과 목소리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정부 노력이 표피적이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근본적인 대안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인데, 정치의 해가 될 올해와 내년에 이처럼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이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류용규 편집부국장 겸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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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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