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메가지키가 도망가는 상어를 추격하는 이유는 죽여서 먹이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죽이는 재미로 하는 짓이었다. 녀석들은 선천적으로 호전적이고 사나웠다.

가지키 종류는 태평양 인도양 동해 등 세계 어디에서도 서식하고 있었으나 특히 필리핀과 일본 한국 등의 연해에 많았으며 그 지역에서 산란도 했다. 마가지키와 메가지키도 역시 그 지역에서 많이 살았고 산란도 했다. 그래서 일본의 쓰킨보 어선도 주로 그 지역에서 가지키를 잡았는데 쓰킨보 어선을 타고 그 지역에서 쓰킨보로 가지키를 잡다가 죽거나 중상을 입는 어부들이 많았다.

그때 가지키를 잡다가 죽은 선원의 장례식에 그가 속해 있던 조합의 오야분이 참석했는데 머리가 완강한 몸집의 영감이었다. 그가 장례식에 나타나자 장례식에 나와 있던 선원들이 모두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오야분의 첫 말이 거칠었다.

"무사의 나라인 일본에서는 무사가 전쟁터에서 전사해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 법이야. 그리고 쓰킨보의 선원이 쓰킨보로 가지기를 잡다가 죽어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 법이야. 무사가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과 같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일본의 무사가 아닌 영국의 학자인 다니엘 교수가 쓰킨보선을 타고 있다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미 보험사에서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는 다니엘 교수에 대한 생명보험은 취소하고 있었다. 다니엘 교수는 그래도 쓰킨보선을 타고 출항했다. 목숨을 걸어 놓은 것이었다. 쓰킨보선이 출항하자 항구에 있던 다른 배들은 모두 길을 비켜주었다. 난폭하고 위험한 쓰킨보선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보통 기린의 목처럼 높은 감시대가 붙어 있는 쓰킨보선에 타면 보통 사람들은 2~3일만에 심한 배 멀미를 앓아 배에서 내려오기도 힘든 법이었는데 다니엘 교수는 잘 견디고 있었다. 그동안 5년 동안에 일본어선을 탔던 경험에 의해 그는 배 멀미를 잘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선실에서 배 멀미를 견딜 수 있는 약을 먹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던 쓰킨보선은 이즈 반도 연안에서 벗어나 동해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으나 아직 가지키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필리핀 연안에서 산란을 하러 나타나는 법이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쓰킨보선은 침몰하지 않고 가고 있었으나 광대한 바다에서 끄떡거리면서 가고 있는 꼴이 서글프기만 했다. 언제 꼬꾸라질지 몰랐다.

선장이 말했다. "이제 곧 가지키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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