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오늘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저를 좀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그대,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 오너라. 내 그대를 편안케 해 주리라." 보리 달마와 혜가 사이에 주고 받았다는 유명한 `안심법문`의 한토막이다. 시대가 다변화 될수록 번뇌의 풍랑 또한 사나워져 가기만 한다. 까닭 모를 불안과 번민에 시달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행한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자아상실의 세기`로 규정한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이 엄청난 변혁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 고뇌에는 변함이 없다. 인과에 의해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가야 하는 이 실존적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착하기로 말하자면 모든 것을 버리고서도 만족해하는 존재, 악하기로 말하자면 동전 한 잎에도 목숨을 빼앗아 버리는 잔혹한 존재. 도대체 어떤 것이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일까. 예로부터 수행자들은 이 `마음의 근원`을 찾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내던졌는데 이들을 운수납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천하를 유행했다. 남루한 누더기에 걸망 하나가 그의 전 재산이었고 버리려 해도 버릴 것이 없고, 가려 해도 가야 할 곳도 없는 그 지극한 오도의 세계를 향한 나그네이었던 것이다.

선의 마음은 진여의 마음이다. 마치 삼라만상이 명경에 비추듯이 마음의 거울 또한 모든 것을 비춰 준다. 마음의 근원을 회복한 이를 깨달은 자라 한다. 그러나 마음의 근원을 망각하고 헛된 욕심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중생이라 부른다. 인간에게는 다소의 외부지향적인 면이 있다. 자신에게 결여된 점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일종의 콤플렉스이다. 이 사고가 확대되면 언제나 진리는 바깥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선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되찾으려는 수행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의지와 결단으로 이 험난한 세파를 건너갈 수 있다. 그런데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 의지해서 내 삶이 좌우 된다는 생각은 지나친 자기 기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의 공부는 이 내면을 증득하는 공부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일상적인 자기는 언제나 육근작용으로 움직여진다. 그러나 육근이란 결코 본래적인 자아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육근의 감각기관에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근을 통괄하는 어떤 주체가 있어야 한다. 유식불교에서는 이 근원적 의식을 제팔 아뢰야식 이라고 부른다. 선가에서는 이것을 `마음`이라고 총칭한다. 우리들 육신은 이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본래적인 마음을 회복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 자유인으로서 살 수 있다. 더 이상 감각과 욕망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진실한 대도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결코 별개의 `내`가 아니다. 오히려 감각적 자신이 극복되고 원래의 자신을 회복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둘째, 현대를 자아상실의 시대로 규정한다면 우리는 선으로부터 많은 시사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나를 이기기 위한 노력, 껍데기의 내가 아니라 진실한 내가 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들 삶의 목표여야 한다고 본다. 선이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거룩한 경지는 아니다. 홍진 속에 놓여진 이 일상이야 말로 바로 선이기 때문이다.

셋째, 요즈음 들어서 부쩍 전통적인 것, 한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사이 지나치게 우리들의 의식구조나 생활패턴이 서구적으로 변모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일 따름이다. 개나리는 노랗다, 진달래는 붉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이 한국의 마음이 바로 지금은 잊혀져 가는 선의 마음이다. 자연에 대한 외경,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 그리고 인고 등을 한국인들은 품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 선의 마음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사찰이다. 새벽녘에 도량석 소리는 한결 청아하다.

다섯째, 무명을 깨우는 죽비의 질책이기도 하고 끓어 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잠재우는 다정한 법음이기도 하다. 오늘도 진실한 나를 찾기 위한 정진에는 쉼이 없다. 삭발한 스님들의 이마 사이로 또다시 햇살이 내려 비친다. 그들의 어깨 위로는 장부의 기개가 역력하다. 정적을 깨는 장군 죽비 소리만이 고즈넉한 산사에 울려 퍼진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우리는 또다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삶 또한 지는 해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영원 속에 안주하는 내 마음의 주인공을 찾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무의미한 삶인가.

이제 진리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석준 스님(대전불교사암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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