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국가 등 서로 지켜야할 사회 약속

올 겨울 보기 힘들었던 흰 눈이 산천을 하얗게 덮었다. 사락사락 눈 내리는 밤엔 화로는 아니더라도 이동식 버너나 가스렌지에 고구마나 가래떡을 구워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 소소함이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뉴스는 꺼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삼개월여 지위고하를 막론한 선수들의 거짓말 대회를 거의 생중계처럼 접했다. 저녁 무렵 하루의 거짓말 대회를 정리하는 뉴스가 나오고, 자고 일어나면 또 새로운 사실들이 거짓말을 했던 어떤 이의 뻔뻔함을 드러냈다. 국민들은 뉴스를 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자는 거짓말에 오랫동안 노출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봤는데, 실망감과 분노, 불신, 그리고 거칠어진 사고가 켜켜이 쌓여 많이도 지쳐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국민들의 심리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떠할까. 거짓말은 허구에 기반하기 때문에 공중에 뜬 모래성과 같다. 따라서 끊임없이 보수공사가 필요해져서 거짓에 거짓을 낳게 되고 덩달아 작자(作者)는 불안감 속에서 초조한 심리상태를 가진다. 또한 거짓의 성이 무너질 것을 대비해 자백이든 줄행랑이든 극단적인 선택을 대비하게 될 것이므로 사람간의 유대관계는 허울만 남고 자기 살 길만 모색하느라 양심과 괴리된 심리를 보인다. 그런데 어떤 거짓말쟁이들은 자기가 만들어낸 거짓을 진실한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할 정도로 진화된 자들도 있다하고 그 결과로 거짓말탐지기라는 과학문물도 무력화시킬 정도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경찰수사과정에서 흔히 쓰이는 거짓말탐지기의 조사결과는 다행스럽게도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가 없다는 것이 현재 법원의 입장이다.

거짓말은 인간의 3대 본능이라고 하는 식욕, 수면욕, 성욕에 버금가는 생존본능의 하나라고 한다. 거짓말을 안 해 본 사람은 없다. 거짓말에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어 때로는 인간사를 보다 즐겁고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도 어찌보면 거짓말 선수가 만들어낸 거짓말 덩어리지만 인간의 지적영역과 감성에 작용해 많은 것을 가르치고 남기면서 그 가치를 가진다.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시간은 길지 못하다. 거짓으로 개인의 삶이나 한 사회가 지탱되거나 존립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개인간이든 개인과 국가기관 간이든 서로가 지켜야 되는 필요최소한의 약속은 헌법과 법률로 정하고 이를 지켜야 하며, 어기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아야 만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국가시스템은 서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약속을 입법부가 만들고 행정부는 그 약속이 잘 지켜질 수 있게 법 집행이라는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경우 엄정한 잣대로 가이드라인을 긋고 다잡이를 하며 시민들과 언론은 이 모든 과정의 감시자로서 역할을 할 때 민주주의 국가라는 칭호를 받는다. 우리나라는 과연 국제사회로부터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받고 있을까? 매우 유감스럽지만 국가의 골격을 규정한 헌법에 대한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우리 스스로 칭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과 달리 그 동안 권위주의적 또는 권력집중형이라는 수식어를 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 추운 겨울에 거리에 나가 반민주주의 권력에 대항해 주권자로서의 목소리를 부르짖었다. 이에 국회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특별검사를 출범시키고 그 간에 자행된 여러 권력형 사건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고 있으며,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조사결과에 상응하는 엄정한 판결을 내놓을 것이다. 제대로 작동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령에 근거한 법 집행과 문서에 의한 행정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의 거짓말은 용인될 수 없고 설령 거짓이 있다 하더라도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어 곧바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가진다.

그 동안 지속된 온갖 거짓말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 회복되는 때는 우리가 만든 국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때가 될 것이다. 눈 오는 밤, 따듯한 집에서 뉴스를 시청하면서 가족들과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웃을 수 있는 나라가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이다. 신상훈 법무법인 명경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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