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어제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자리를 빌려 책임총리 지명권 이양 카드를 제시했다. 안 지사 구상대로라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다수당이 총리 지명권을 행사하게 되며, 그 총리가 내치 중심의 내각을 통할하게 된다. 대신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5000만 국민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장기적 국정과제에 몰두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대선 주자의 여러 공약에 대해 경중을 논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책임 총리 문제는 여전히 묵직한 사안이다.

대통령 권력을 나누는 책임총리제 도입은 개헌을 통해 접근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이번 대선의 경우 헌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대통령 권한을 줄이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헌이 대선 이후의 과제로 밀려날 것이고, 그냥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 수밖에 없다. 안 지사처럼 책임총리 지명권을 내려놓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통령과 더불어 국회 다수당이 지명·인준해준 총리가 국정운영의 사실상 투톱으로 기능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차기 정부를 담당하게 될 대통령 의지에 따라 분권형 대통령제의 실험 효과가 기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 지사의 책임총리 공약은 그런 점에서 매력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로 간주된다. 20대 국회에 과반 의석을 점유한 정당이 출현하지 못한 상황이어도 개의치 않아도 된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한 다른 정당과 손을 잡게 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다당제화 된 국회 지형을 보건 데 누가 대통령이 돼도 독선적 국정운영 행태와는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은 열린 국정, 열린 권력을 지향하는 게 시대정신과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안 지사의 책임총리 운용 방안은 현실 여건과 정치환경 속에서 시도 가능한 교집합의 산물로 이해된다.

안 지사가 이를 실천하려면 당내 경선,대선 본선 문턱을 차례로 넘어야 한다. 대선 링에 오르기로 작정한 마당이니 핵심 공약 마케팅 분야에서 역량과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표심을 깊게 파고드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라야 승산이 보일 수 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