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뒤 `설`이다. 설은 추석과 더불어 한민족 최대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만나고, 즐기는 시간이지만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스트레스도 각양각색이다. 어른들의 의례적인 공부 덕담이 학생들에게는 비수로 꽂힌다. 취포자, 혼포자는 가족들과 대면이 껄끄럽다. 직장인들은 가벼워진 지갑 사정에 돈 쓸 일은 많아져 위축. 솔로몬도 풀지 못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미묘한 신경전은 명절 스트레스의 단골 레퍼토리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스트레스`에 그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명절 스트레스 폭발로 명절 뒤 남남으로 갈라서는 가정이 평소보다 는다. 명절이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상황을 개선해보자며 `성 평등한 명절 보내기 캠페인`도 나왔지만 성과는 미지수. 스트레스를 피해 해외로 떠나는 행렬로 명절 앞 공항은 북새통이지만 그 역시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조금은 넉넉한 심정으로 임해보는 건 어떨까? 명절 스트레스 백신으로 시 한편 처방한다. 이정록 시인의 시, `까치설날` 일부이다.

"까치설날 아침입니다. 전화기 너머 당신의 젖은 눈빛과 당신의 떨리는 손을 만나러 갑니다. 일곱시간 만에 도착한 고향, 바깥마당에 차를 대자마자 화가 치미네요. 하느님, 이 모자란 놈을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선물한 점퍼로 마당가 수도 펌프를 감싼 아버지에게 인사보다 먼저 핀잔이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내가 사준 내복을 새끼 낳은 어미 개에게 깔아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개만도 못해요? 악다구니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파리 목숨이 뭐 중요하다고 손주 밥그릇 씻는 수세미로 파리채 피딱지를 닦아요? 눈 치켜뜨지 않게 해주십시오...(중략) 마트에 지천이에요. 먼젓번 추석에 가져간 것도 남았어요. 입방정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루 더 있다 갈게요. 아니면 사나흘 더 자고 갈게요. 거짓부렁하게 해주십시오. 뭔 일 있냐? 고향에 그만 오려고 그러냐? 한숨 내쉴 때, 파리채며 쥐덫을 또 수세미로 닦을까봐 그래요. 너스레 떨게 해주십시오. 용돈 드린 거 다 파먹고 가야지요. 수도꼭지처럼 콧소리도 내고, 새끼 강아지처럼 칭얼대게 해주십시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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