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교수의 시네마수프] 이웃집에 신이 산다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을 때, 혹은 아직은 그 일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또는 그냥 웬 뚱딴지같은 일이었을 때, `다 이유가 있겠지`, `뭔가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은 적이 있을 겁니다. 영어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이라고 하곤 하지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은 심술궂고 폭력적인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직역하면 `완전히 새로운 신약성경`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허름한 아파트, 늘 잠옷차림에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 주눅 든 어머니, 집나간 오빠, 그리고 이제 점점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키워가는 사춘기 문턱에 선 어린 딸.

이렇게 평범하고 비루한 모습이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예수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해 인간의 세상으로 가출을 했던 것이라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수의 여동생, "모두가 아들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아무도 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바로 그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꼬마여자 아이 `에아`입니다. 그리고 여신인 어머니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기가 죽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브루셀을 만들고는 이 동물 저 동물 갖다 놓아보다가 결국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놓고는 만족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이 지루해 진 하나님은 이제는 피조물들을 괴롭히는 재미에 살고 있습니다. 재미로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다른 재난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커다란 재난들뿐만 아니라 작은 불운에 관한 규칙들도 놓치지 않고 만들어 놓습니다. 빵에 쨈을 바르다 떨어뜨리면 꼭 쨈을 바른 쪽이 바닥에 닿게 떨어집니다. 그릇은 꼭 깨끗이 씻어 놓고 난 후에 깨지고,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확률이 매우 적어집니다.

에아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죽을 날짜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전송합니다. 모든 휴대폰 소지자들이 문자로 자신에게 남은 살아갈 시간이 카운트 되고 있는 문자를 받고 세상이 혼란에 빠집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수십 년 혹은 수십 일 혹은 불과 몇 분의 남은 시간을 통보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일상의 규칙 따위는 내팽개치기 시작합니다.

"인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나한테 꼼짝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이 긴장하고. 죽는 날을 알면 누가 개고생을 하겠어? 언제 죽을지 알게되면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말 것" 이라며 노발대발하여 딸 에아를 찾으러 인간의 세상으로 따라오는 하나님.

새로운 신약을 쓰고자 인간의 도시에 내려온 에아는 노숙자 할아버지 빅토르에게 새로운 신약의 기록을 맡기고, 팔을 잃은 아름다운 여인 오렐리, 가족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 온 50대의 남자 장 끌로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초로의 여인 마르틴, 자신을 암살자라고 믿는 남자 프랑스와, 스스로를 성도착자라고 생각하는 마크, 그리고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하는 병약한 소년 윌리 까지 여섯 명의 새로운 사도를 모읍니다. 사도들은 각자의 사랑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쁨의 판타지의 시작이라면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언두(undo), 실행 취소시키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슬픔의 판타지의 마지막이겠지요. 어린 아이들이 혼자 넘어지고도 무안함과 속상함에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은 인간 세상의 비극을 하나님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원망과 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생은 스케이트장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거든"이라는 냉소로 시작해서 "삶은 내가 상상한 대로 끝날 거야. 이런 행복은 상상해보지도 못했어" 라는 희망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남은 시간동안 삶의 유일한 위안과 희망인 사랑을 찾아 모으라는 은근한 제안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일들은 일어나야만 했던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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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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