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네요. 우리가 알던 지식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우리 교실에서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한 설명을 맡고 있는 고원용 반장님의 대답이 머리를 때린다. "우리가 잘못 알았던 게 아니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거죠."

매주 금요일 빅 히스토리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우리는 요즘 인류의 진화를 공부하고 있다. 우주와 별, 태양계와 지구, 생명의 역사를 공부했던 6개월 동안에는 닐 타이슨의 `코스모스`를 주로 보았고 인류의 진화와 관련해서는 EBS 다큐프라임 `인류의 생존` 2부작을 먼저 보았는데, 인류의 진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EBS 다큐프라임을 고른 이유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배웠던 인류의 진화 계보는 폐기된 지 오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계보를 지금의 아이들은 배우지 않는다. 교과서도 계속 바뀐다.

인간은 최소 24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단 하나의 종이 남아 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기로 진행되지 않았고 복잡한 가지를 이루었으며, 뇌 용량은 작지만 도구와 불을 사용했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으로 그 계보는 더욱 복잡해졌다.

2003년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플로레스의 리앙부아 동굴에서 새로운 종으로 보이는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 키가 1미터 정도로 몸집이 작고 머리의 크기는 현생 인류의 삼분의 일에 불과해서 `호빗`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소설에서나 등장하던 `호빗`이 진짜로 있을 줄이야. `호빗`의 정체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추가 발굴이 이어지면서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2004년 네이처 논문에 의하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불과 1만 2000년 전까지도 살아 있었다. 3만 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도 현생 인류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종의 인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1만 년 전이면 꽤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2016년 4월 네이처에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멸종 연대를 수정하는 논문이 실렸다. 2004년 논문의 저자들이 참여한 연구였으니 개정판을 낸 셈이다. 과학자들은 리앙부아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 및 도구와 지층의 연대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멸종 시기를 5만 년 전으로 앞당겼다.

이 장면에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실상 마지막 `호빗`이 언제 죽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14년 전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10년 넘게 가장 최근에 멸종한 인간 종이었다가 작년에 다시 그 자리를 네안데르탈인에게 넘겨줬다. 어떤 지식은 없었다가 생기며, 있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지식도 태어나고 죽는다. 어떤 특정 지식의 신뢰도를 정량화 할 수 있다면 지식의 신뢰도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식은 빨리 자라고 어떤 지식은 대기만성일 것이다. 스케일을 키우면 지식의 생몰연대표를 만들 수도 있겠다.

지식이 태어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과학 명제는 `현재까지의 증거로 과학자들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이라는 주석이 생략된 채로 말해진다. 새로운 증거가 더해지면 이론은 수정될 것이다. 언제든지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과학의 정오표와 개정판을 틈나는 대로 확인하자. 지금은 맞지만 나중에는 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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