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당시. 한국 정치에서 정치인과 서민 유권자 사이의 복잡한 함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일명 `이회창 흙 오이 사건.`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전통시장을 방문했다가 상인이 건넨 흙 묻은 오이를 털지도 않고 먹었다가 무수한 뒷말을 남겼다.

`진짜 서민들은 오이를 씻어먹는다`는 따가운 일침과 함께 `서민 코스프레` 한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

`코스프레`는 의상을 의미하는 `코스튬`과 놀이를 의미하는 `플레이`를 합친 `코스튬 플레이`의 일본식 줄임말이다. 유명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 의상을 입거나 분장을 하고 흉내내는 놀이를 말한다. 평소 같으면 전통시장이나 길거리 음식 근처에도 가지 않을 정치인이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하는 것을 비꼬아 `서민 코스프레`라 일컫는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 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서민 코스프레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귀국과 함께 대권 행보에 나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연일 이런 비판을 듣고 있다.

입국 당시 공항철도 승차원 무인 발매기에 1만 원권 지폐 2장을 한꺼번에 밀어 넣는가 하면, 편의점에선 프랑스 생수 `에비앙`을 꺼냈다가 당황한 보좌진에 의해 국산 생수로 교체하는 영상이 퍼져 논란이 일었다.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을 땐 환자가 해야 할 `턱받이` 착용 논란과 함께 보여주기식 봉사 활동을 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몸에 맞지 않는 잇따른 `서민 행보`가 `서민 코스프레`라는 역풍으로 되돌아 온 꼴이 됐다.

대선 주자들은 적어도 선거철엔 `서민`이고 싶어한다.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서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이들은 `진짜 서민`이 아니다. 또 `나도 서민`이라는 소탈한 이미지를 내세워 서민의 표를 얻기 위한 이벤트란 것도 알고 있다. 이미 앞선 대선 주자들로부터 지겨울만큼 봤던 장면이다.

서민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선거 때만 보여주는 흉내 내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과 원칙을 세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주려는 진정성.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가 알려줬다. `서민 코스프레` 같은 가면은 더이상 필요없다. 원세연 지방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