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보자!

왕복14차선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다면?

현재 우리의 교통문화 수준이라면 복잡하게 얽힌 차량과 빵빵대는 경적, 소리 지르는 운전자, 여러 대의 사고차량이 얽혀 있는 풍경이 연상된다.

하지만 신호등 하나 없고 교통경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에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중심 메스켈 스퀘어 인근 왕복 14차선의 사거리 교차로가 원활이 운영되는 영상이 몇 년 전 유튜브에 올라와 전 세계 네티즌들을 놀라게 했다. 네 방향에서 직진과 좌회전, 우회전 등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길 건너는 사람들에 버스정류장까지 있어 무척 혼잡해 보이지만, 우리의 상상과 달리 한 건의 충돌사고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습이 놀라움을 줬다. 이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국민들의 질서의식 때문에 가능할텐데 양보 없는 우리의 운전문화를 반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전에도 몇 년 후 이런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왜냐하면 대전에는 양보와 배려의 실천으로 품격 있는 교통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민운동 `먼저가슈`가 있고, 18개 단체 4만 1000여명이 먼저가슈 교통문화운동시민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대전형 교통문화운동 `먼저가슈`를 추진하고 있는 대전시는 최근 국토교통부의 교통문화지수 평가결과 지난해 전국 4위에서 올해는 전국 2위로 올라섰다. `먼저가슈`는 국민안전처로부터 `2015 안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먼저가슈 교통문화운동시민모임은 전국 시민단체 중 유일하게 최근 국회 교통안전포럼으로부터 `2016 선진교통안전대상` 단체상을 수상한 저력을 갖고 있다.

`안전하고 품격 있는 건강한 도시 대전`을 목표로 양보하는 손 모양으로 표현한 자체 CI를 개발했으며, 이를 활용한 차량스티커를 보급해 생활 속 실천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매월 네 번째 금요일 `교통문화의 날`에는 운전면허시험장과 으능정이거리, 유치원, 학교, 복지관, 버스·택시 승강장 등을 찾아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과 함께 교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양보와 배려를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토크콘서트, 그림그리기·글짓기 대회, 플래시몹 캠페인, 먼저가슈 특강 등을 통해 교통문화운동 먼저가슈의 실천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특히 보행자 안전교육을 위해 `찾아가는 교통문화교실`을 운영해 지난 한해 약 6만여 명의 어르신과 아이들이 교통안전 체험교육을 받았다.

얼마 전 출근길 기분 좋은 현장을 보았다. 혼자 걷던 아이가 파란불이 켜지자 한손으로 옆에 계신 할머니 손을 꼭 잡더니 한손을 번쩍 들고 좌우를 살피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것이 바로 먼저가슈 교통문화운동의 꾸준한 활동이 가져온 효과가 아닐까 싶어 흐뭇해졌다. 아이는 `찾아가는 교통문화교실`에서 배운 교통안전 체험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며 걷는 대학생, 앞만 보고 걷는 어른들은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몰랐을까? 어쩌면 아이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실천을 안 했을 뿐….

지식을 얻기 힘들었던 시절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지만 넘쳐나는 지식화 시대에 이 말은 "아는 것을 실천해야 힘이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아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5명에 비해 훨씬 많은 10.8명으로 33개 회원국 중 꼴찌다. 그렇다면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대전시 교통사고 사망자는 얼마나 될까? 78명이다. 먼저가슈 교통문화운동이 본격 추진되기 전인 2014년 97명에 비해 19명이 감소했지만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적지 않은 수치다. 교통신호 준수, 안전거리 확보, 교통약자 배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당연한 상식들을 지식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다면 78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됐다.

대한민국 교통의 중심지 대전에 2025년이면 신교통수단인 도시철도2호선 트램이 도로 위를 달리게 된다. 보행자를 중심으로 자동차와 트램, 버스, BRT, 자전거 등이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대전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차량보다 사람이 존중되는 선진국 수준의 품위 있는 교통문화가 필요하다.

먼저가슈 시민운동에 있어 대전 시민들의 실천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조금 양보하면 누군가는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내가 조금 배려하면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는 마음으로 시민 스스로 먼저가슈 교통문화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에디오피아의 메스켈 스퀘어 영상이 놀라움을 주었듯 `먼저가슈` 실천으로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장 적은 도시 대한민국 대전이 유튜브에 소개되길 소망해 본다.

임철순 <대전시 대중교통혁신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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