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김정원
"애인(愛人)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수치스러움과 상대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상담이나 신고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자칫 최악의 상황인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초기 대응 및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며 전문가들은 제언하고 있다.

최근 대전에서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A씨는 지난 12일 오후 7시쯤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빌라 계단에서 귀가 중이던 헤어진 여자친구 B씨의 온 몸을 흉기로 30차례 찔러 살해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헤어진 여자친구 B씨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 주변 CCTV 및 차량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A씨가 차량으로 도주하는 장면을 확인하고 추적에 들어가 충북 옥천의 한 여관에서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도주한 범인을 경찰이 3시간만에 검거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보도 이후 기자의 카카오톡 채팅방 알림음이 한동안 울렸다. `사람 잘 만나야 한다`, `무섭다`, `사례가 더 많을 것 같다` 등등의 내용이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이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신고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연인에게 속아 피해 초기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명하지 못했거나 상대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온다.

대전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2월 3일부터 12월 말까지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 접수된 사건은 모두 479건이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지난해 2월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한 테스크포스(TF) 팀을 꾸려 신고 활성화 등을 독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피해자들이 직접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연인 사이 신체·언어·정신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감싸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데이트 폭력은 단순한 다툼이 아닌 범죄다. 피해자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남의 일로 여기지 말고 주변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봐야 한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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