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리들공원이 작년 봄에 대수선을 하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경사로 지붕을 유리로 바꾸고, 공원 둘레정원에 높이와 폭이 각 1m 정도 되는 반송(盤松)을 10그루 정도를 노변에다 심었다. 우리들공원에 심어진 반송은 그루당 어림잡아 몇 십 만원은 족히 넘을 듯 보이는 제법 모양새를 갖춘 관상용 소나무이다. 반송은 생육환경이 노지에서도 잘 견디는 내건성 겉씨식물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밤마다 조금씩 수모를 당하면서, 결국은 한그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또 한 그루는 가지가 모두 잘려 밑동만 남아있다. 그리고 나머지 소나무들도 한두 가지씩, 또는 한 묶음씩 잘리고 꺾이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兪氏 夫人)이 지은 조침문(弔針文)에서 바늘 하나 부러졌을 때 `오호 통재라`고 한탄했는데, 수백 수천의 솔잎이 밤마다 사라지는 이 기괴한 광경을 보면 얼마나 통탄할지 모르겠다. 저 푸르고 싱싱한 가지를 도대체 누가 꺾는 것일까. 식당가를 찾은 손님이 나와서 흡연을 할 수 있도록 플라스틱 벤치가 놓여 있는데, 이들이 놀다 심심해서 그랬을까? 술에 만취한 사람이 분풀이로 해놓고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비행 손님같은 졸부가 짓밟았을까? 아니면 주변 상가 주인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손찌검 했을까? 가끔 열리는 야외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이, 아니면 하야를 외치던 군중들이 밟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점은 풀리지 않고, 소나무는 오늘도 어둠속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다.
애국가에 나올 만큼 큰 소나무는 아니지만 원도심에 이렇듯 반송 몇 그루 키울 수 없는 시민의식이라면 참으로 우리가 옳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강한 훈육을 하거나, 아니면 관련법을 적용시켜 처벌을 해야 한다면, 과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사회를 올바르게 지키는 길일까 다시금 생각 하게 된다. 작은 생각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조금씩 죽어가는 소나무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 부디 남은 반송이라도 온전히 금년 추위를 잘 버티고, 싱싱하게 자라기 기대해 본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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