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맹장이 아직 우리 몸 속에 살아남은 건 분명 존재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역사 속에 의미 없는 생존은 없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 맹장을 제거한 사람들은 질병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설사 증세가 생기면 대부분의 박테리아가 몸 밖으로 쓸려나간다. 이때 비타민을 합성하는 등 이로운 균 중 일부는 충수라는 대피소에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장 내 환경이 정상화되면 유익균들은 빠르게 증식해 대장을 원상복구 시킨다. 맹장이 없으면 살아남은 유익균 숫자가 적어 회복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건강이란 무균상태가 아니라 균들이 평형을 이루는 상태다. 유해균을 없앤다고 유익균까지 청소하면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중국 마오쩌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49년 국가주석에 오른 마오의 화두는 식량문제였다. 벼를 쪼아먹는 참새들을 본 그는 "해로운 새다"라는 말과 함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섰다. 1958년 베이징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까지 설치했다. 이 작전 때문에 2억 마리가 넘는 참새가 죽어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선 좀처럼 참새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벼 낱알을 먹긴 했지만 참새는 사실 해충들의 천적이다. 참새가 사라지자 쌀 수확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간 중국에서 40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마오는 결국 정치 2선으로 물러나야 했다.
`해로운 새`로 낙인 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은 어쩌면 맹장과도 같다. 농업, 광업이나 제조업처럼 생산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늘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활력소가 되고 면역력을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용민 취재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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