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순절한 충신 김여물은 문과 장원급제자 출신으로, 외아들 김류는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모친은 창원 대도호부사를 지낸 강의의 딸 신천 강씨(康氏)다. 청음 김상헌(金尙憲)이 쓴 그의 묘비명엔 모친 강씨에 대한 기록이 간략하게 보인다. `김여물은 유학(儒學) 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강씨는 아들의 정신세계에 훌륭한 가르침을 심어준 어머니였다.`

1977년 청주비행장 신축공사에서 김여물의 누나 순천 김씨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모친 강씨가 딸 김씨에게 보낸 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 아버지 데리고 있던 년 생각하면… 그 얼마나 망령되고 어리석은 년인지.` `마음이 서러우니 내가 죽을 때로구나. 그 놈의 벼슬이 원수다.` 서울에 살던 강씨가 찰방 벼슬을 하던 남편 김훈(金壎)의 임지 경북 청도에 와서 보니 남편이 첩을 얻어 살고 있었고 집안의 일이 첩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정승자리에 있어도 첩 없는 사람이 많은데 나이 예순에 겨우 찰방된 사람이 첩을 얻으니 이 애달픈 노여움을 어디다 풀겠느냐?` 다 늙어서 고작 종육품 외관직인 찰방도 벼슬이랍시고 냉큼 첩을 들인 남편이 한심하고 미워 죽을 지경이다. `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밤새도록 울고 앉아 있는 날이 많으니 내 팔자를 한탄한다` 구구절절 가슴에 맺힌 울분을 쏟아낸다. 하지만 조선 사대부가 여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품위를 내던질 수는 없었다. `종들이나 남이나 행여 내가 시샘한다 할까봐 아픈 기색을 않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 둘 데 없어 편지를 쓴다. 백 권을 쓴다한들 다 쓰겠느냐. 생원(아들 김여물)이나 네 남편에게도 다 이르지 말고 너희만 보고 불에 넣어라.` 시샘, 달리 말해 투기(妬忌)는 조선여인의 금물이자 일곱 가지 악(惡) 중의 하나. 아들이나 사위에게도 말하지 말고 너희 딸들끼리만 보고 불에 태워라. 그러나 딸 김씨는 어미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고이 간직하여 저 세상으로 품고 갔으나 그만 수백 년 뒤 그 놈의 비행기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가 되고 마니 이 무슨 불효이며, 또한 그 시절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주며 조선조 역사학의 혁혁한 공로자가 되었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잘 아시다시피 조선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괴물이 있었다. 아들도 낳아야만 했고 질투도 하면 안 되었고 말이 너무 많아도 걸려들었다. 하지만 삼불거(三不去)란 방패도 있었다. 부부 함께 시부모 삼년상을 치렀다든지, 시집 온 후 집안이 부귀해졌다면 부인을 내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합당한 이유 없이 이혼을 한 남자에겐 태형 80대란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조선말이 되면 아들을 못 낳은 죄와 투기는 칠거지악에서 해방되고 또 자식이 있는 경우가 삼불거에 추가된다.

지금은 자유로운 세상이다. 하지만 눈물로 먹을 갈아 편지 쓰며 울분을 쏟아내던 신천 강씨는 과연 사라졌을까. 남들이 알새라 아픈 기색도 못하고 밤새도록 홀로 가슴 앓던 친정엄마는 이제 정말 사라졌을까. 어느 누구 말처럼 그야말로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대전보건대 방송문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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