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는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질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 없이.

버클리에 와서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읽는 이 기분이란.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점점 짙어져 가는 사랑의 눈망울들. 그러고 보면 사랑은 그다지 거창한 게 아니라는 생각뿐. 사랑은 함께 하는 사소한 시간과 일상 가운데 싹트는 게 아닐지. 사랑은 그저 그대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이라고. 얼굴 붉은 사과 두 알을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는 것이라고. 시인이 실천한 이 사소함을 넘어서 발견한 사랑의 큰 얼굴. 그러므로 사랑은 봄이 오는 언덕을 바라보며 새파래지는 풀빛과 샛노란 유채꽃의 빛깔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야 벌써 버클리에 봄이 오는 그 이유를 내 알겠다. 아니 버클리에 이미 와 머무는 내 큰 사랑을 알겠다.

어느 사이엔지 저 초록의 풀빛을 힘차게 굴려 올리며 봄으로 옮겨가는 힐의 튼튼한 종아리들. 이렇듯 버클리는 겨울 속에서도 이미 완연한 봄을 들어내며 또 다른 사랑에 깊이 빠져 있다. 버클리를 뒤덮고 있는 것은 힐마다 펼쳐진 초록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싹트고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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