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읽기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차영민 지음)=이 책은 제주에 사는 젊은 작가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모은 에세이이다. 최소한의 밥벌이와 글쓰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작가는 우리가 삭막하게 스쳐 지나갔던 편의점의 순간들에 온기를 채워 넣었다. 도시의 편의점에서는 인간미를 찾기 어려운데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편의점의 일상은 역동적이며 따뜻하다. 손님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며 기발한 방법으로 진상 손님들로부터 편의점을 지켜낸다. 새움·1만 2000원·304쪽

◇오늘도 법정에 있습니다(아사히신문 사회부 지음·고선윤 옮김)=매일 법원 방청석에서 취재하는 기자의 마음에 또렷하게 남은 사건들, 그 재판 광경을 엮은 이 책은 아사히 신문 온라인 연재에서 시작됐다. 간병에 지친 나머지, 육아에 짓눌려, 사랑싸움의 결과, 빚이 불어서…. 법정은 그야말로 인생과 세상의 축소판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피고의 생생한 말과 숨소리에 마음이 무겁게 흔들린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개인과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학고재·1만 2000원·224쪽

◇독일사 깊이 읽기(고유경 지음)=독일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까. 대다수의 독일사 개설서는 카를루스 대제와 오토 대제 이후 형성된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독일의 기원을 추적한다. 하지만 900여 년 동안 변화무쌍하게 이동해 온 이 제국의 경계 안에 거주하는 다국적, 다인종 주민들이 자신들을 독일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과연 언제부터일까. 이 책은 제목에 걸맞게 고대 로마군과 게르만족의 접전이 벌어졌던 토이토부르크 숲에서부터 베를린 장벽까지 독일의 정체성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들을 통해 의문에 답을 모색한다. 푸른역사·1만 8000원·332쪽

◇미식가의 허기(박찬일 지음)=작가는 광화문 무국적 술집 몽로와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를 오가면서 요리를 하는 주방장이다. 남들은 셰프라고 부르지만 그는 한사코 B급 주방장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광화문과 서교동을 오가면서 면벽수도 하듯이 제철 재료로 요리를 한다. 틈나는 대로 세상의 먹거리와 먹고 사는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주방장으로서 보고, 느끼고, 만져본 이야기를 때로는 뜨거운 돼지국밥처럼, 때로는 맛있는 닭튀김처럼 쫄깃한 문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경향신문사·1만 3000원·256쪽

◇의당 김기홍(박두혁 지음)=역사 속에는 빛나는 행적과 숭고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음에도 대중들에게 미처 다가가지 못한 인물들이 있다. 의당 김기홍 박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학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한 인물의 치열했던 삶과 뛰어난 업적에 관한 기록이다. 의당 김기홍 박사는 국내 진단검사의학의 초석을 다진 의학자이자 교육자, 헌혈운동의 선구자, 탁월한 병영경영자로 한국의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진단 검사의학 분야를 개척하고 당시에는 드물던 의료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해 병원경영을 쇄신했다. 더숲·1만 7000원·480쪽

◇11월-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하승우 외 지음)=이 책의 저자들은 2016년 11월이 훗날 어떻게 평가되든 가장 질박하고 생동감 있는 목소리들을 문자로 모아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광장의 발언들과 노래들이 모두 허공으로 흩어져버리고 만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시작된 냇물의 목소리를 도외시하고 광장의 거대한 함성만을 기억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저자들은 가능한 아래에서, 지역에서, 소수자의 눈으로 보는 11월을 기록했다. 광장의 함성은 단일한 한 덩어리가 아니라 많은 이질적인 분자들이 모인 현상일 것이다. 삶창·1만 6000원·316쪽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인상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