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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정보화사회와 그 적들

2017-01-04기사 편집 2017-01-04 0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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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세계 신문 역사의 문을 열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선조 10년 1577년 8월 사헌부는 민간에서 조보를 인쇄해 대량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다. 조보는 매일 아침 승정원(오늘날 대통령 비서실과 유사)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통신문이다. 조정의 주요 인사이동 정책의 시행과 정지, 과거시험 날짜 공지와 합격자 명단 공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과 그 답변, 기이한 자연현상과 이웃 중국·일본의 소식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신문과 유사하지만 현직 관리와 고위직 퇴임자에게만 전달됐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특히 직접 손으로 옮겨 쓰는 방식으로 배포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자 이를 돈벌이로 활용한 이들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인쇄신문이라 할 만한 조보의 시작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기인들이 활자를 새겨 조보를 인쇄해 파니 사대부들이 모두 편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민간의 신문 제작은 3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선조는 1577년 11월 우연히 인쇄된 조보를 보고 격노한다. 민간 조보의 내용이 타국에 전해지면 나라의 수치를 폭로하는 것이라며 관련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관련된 자들은 모두 의금부(오늘날 검찰청과 유사)에서 엄중히 추국을 받고 유배됐다. 발행을 허용한 관리들은 파직됐다. 조선은 구한 말까지 일부 지배계층만 조보를 볼 수 있었다. 선조는 무능과 편협의 대명사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내팽개치고 홀로 의주로 도망갔는가 하면 이순신의 전공이 커지자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 오죽했으면 전쟁 중 권위가 너무 떨어져서 대신들 사이에서 하야 얘기까지 나왔을까.

민간 조보가 폐지된 지 약 30년 뒤인 17세기초 독일에선 렐라치온(Relation)이라는 주간지가 발행된다. 현재 최초의 활자신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량의 정보 유통 체계를 갖춘 유럽에는 자유, 평등과 박애와 같은 시민주권 의식이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이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다시 역사를 바꿀 기회도 있었다. 200년 후인 1776년 정조는 "선조와는 달리 감출 것이 없다"며 민간 조보의 발행을 검토했다. 그러나 대신들의 만류로 조선은 영원히 정보화사회로부터 멀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쑥 기자간담회를 열어 논란이 되고 있다. 카메라도 노트북도 들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조선시대 마인드다. 이용민 취재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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