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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충청의 오늘] 1997년 대선

2017-01-02기사 편집 2017-01-02 09: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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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에드워드 할렛 카(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그 역사 또한 반복된다는 뜻인 듯하다. 그리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현 상황과 유사한 역사 속 그때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20년 전 충청의 오늘'을 통해 당시의 이슈를 살펴보고, 당시 국민들의 여론을 살펴본다.

20년 전인 1997년 1월에도 대통령 선거가 화두였다. 각종 매체에서는 대선에 대한 기대감과 각 후보들의 여론조사결과를 쏟아냈다.

1997년 1월 1일자 대전일보에는 대선 예비후보들의 지지율 분석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김대중, 박찬종, 김종필, 이회창 등이 두각을 보였고, 특히 박찬종 전 신한국당 고문이 충청을 비롯한 부산·경남, 강원에서 선전했다. 당시 선출된 김대중 대통령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65.4%의 지지율을 얻었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신한국당에 뒤지는 모양세였다. 하지만 박찬종 전 고문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경선에서 중도포기를 선언한 직후, 이회창 지지를 거부하고 이인제 후보를 지지했고, 이회창 후보가 신한국당 대선주자로 선출되자 이인제 후보가 결과에 불복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보수세력이 쪼개진 것이다. 반면 호남지역에 정치기반을 둔 새정치국민회의와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연합은 김대중을 단일후보로 내세워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김종필은 국무총리로 임명된다.

대전에서는 정부청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지난 1990년 정부는 청단위 행정기관 지방 이전을 확정하고 대전에 3청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1993년 9월 공사를 착공해 1997년 1월 기준 59%의 공정률을 기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국가중추관리기능의 이전으로 4000여 명의 공무원과 함께 8만 여명의 인구증가 이에 따른 경제 효과로 1400억 원의 직접소득과 4200억 원의 지역생산 증가효과를 기대했다. 정부청사의 이동으로 대전의 중심은 충남도청이 위치한 선화동 인근에서 신도심인 둔산동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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