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세월호 7시간' 무성한 소문 양산 빠르게 퍼진 풍문 결국 사건 실체 드러나 국정교과서·위안부 협상도 허구 청산을

`뒷담화 이론`이라는 게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는 저서에서 "인류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뒷담화 이론`을 내놓는다. 무리 내에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구와 잠자리를 하는지, 누가 속이는지 뒷담화가 솟구친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거니와 현실 역사도 반복된다. 청와대에 반입된 요상한 물품과 대기업 총수들이 박 대통령과 나눈 뒷 이야기, 보안손님, 유령손님은 누구이며, 대통령 올림머리와 세월호 7시간은 연말 연시 최고의 뒷담화 감이다. 청와대 의무실장, 주치의가 주사제 처방을 본 적이 없다거나, 마취제, 프로포폴이 사용됐다는데 주사를 놔준 이가 그 누구도 없다는 어이없음.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한지. 20세기 최대의 정치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은 거짓이 탄로나면서 사임하고 만다. 닉슨이 순순히 물러난 것과는 달리 박대통령은 버티고 있다. 탄핵이라는 말기암 선고에도 관저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꼿꼿이 버틴다.

세밑 대한민국 뒷담화 키워드는 최순실 게이트다. 최순실은 평생 공식 직함도 없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고, 수금(收金) 재단을 만들어 자금을 세탁할 재래식 수법을 일삼았다. 감방 청문회에서 최순실은 `모르는 일`이라 딱 잡아뗀다. 딸은 정당하게 입학했다고 울먹이고 대통령 연설문이 들어 있는 태블릿 PC는 쓸 줄 모른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세월호는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난 몰라`하며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고, 앵무새 군단 김기춘·안종범·우병우를 모른다 우겨댔다. 독일에 막대한 차명재산이 있다는 의혹에는 "알면 몰수하라"고 대꾸했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며 손사래 쳤다. 종신형이라도 받겠다던 최순실의 입은 필사적으로 우겨댔다.

최순실의 `난 몰라`에 시민들은 뒷담화를 재가동하고 있다. 풍문으로, 소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간다. `소문 제조공장`인 언론은 허구의 속살을 들춰낸다. 가려진 시간은 소문의 진원지였다. 2년 7개월 전, 4월 16일로 시간을 돌려보자. 세월호 참사 때 낌새를 눈치채야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눈만 깜빡였다. 설마 했다. 문드러져가는 농단의 미세한 단서를 놓친 것이다. 풍문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 당시 때 외신 기사 한 꼭지.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당시 `세월호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한다. 소문 내기는 금새 사그라졌다. `재팬 기자가 감히 대한민국을 능멸해!`라며 눙쳤다. 지금에 생각해 보건대 그건 나비효과였다. 암시였다. 극도의 예민 반응을 보인 청와대와 법적 소송까지 가며 무죄를 받은 가토 지국장의 기사 한토막은 최순실과 그 공범들을 소환하는 나비였다. 소문은 AI만큼이나 재빠르다. 국정농단과 무수한 상납과 비리, 부정, 국정무능, 그리고 청와대의 가려진 시간까지 뒷담화로 파헤쳐지고 있다. 벌거벗은 차관님은 핫바지로 조연했다. `예예예예`를 꼭 네 번을 하며 최순실 수행비서를 자청한 김종 차관의 굽신본능은 공직사회의 자존심을 뭉갰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잠수함과의 충돌이라는 네티즌 수사대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SEWOL)X`도 소문의 시작일까. 분명한건 이 조차도 무시할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연말 송년회에서 `지금 보수 진보 따질 땐가`라고 탄식한 열혈 보수파 지인이 있었다. 그도 이제 지쳐간단다. 콘크리트 보수들의 피로감이란. 책임과 공공, 도덕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보수는 주술과 허깨비에 홀려 있다. 진짜보수, 가짜보수를 가리자는 것은 진실과 허구를 갈라내는 일이다. 단언컨대 허구는 뒷담화 이론에 완패했다. 버티기로는 어림없다.

서거 400주기인 올해를 하루 남긴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 햄릿의 유명한 독백. 투비 오어 낫 투비(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 뜻이 `이대로냐, 아니냐`로 재해석되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넘어설 것인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은 허구의 청산 위에서만 넘어설 수 있다. 민낯이 드러난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문제도 그와 같다.

이찬선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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