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전망 허술했던 한해 약자들 피해 면밀히 살피고 아픈 경험도 반면교사 삼길

다양한 범죄를 접하는 곳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가해자도 사람이었고 피해자도 사람이었다. 때로는 범죄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곳에서 그 경계선을 살아가는 아슬아슬한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범죄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아찔한 순간들이지만 정작 그 순간을 살아가는 그들은 평안했다.

사람들은 이제와서야 안전을 이야기한다. 경제발전이라는 화두에게 많은 우선권을 내주었는데, 이제는 안전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다행이다. 사회속의 범죄에 사람들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형사사법체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경찰은 물론 형사사법기관이 그 주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강력한 범죄자들에게 형사사법 체계는 더욱 엄중한 모습을 해야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을 보이는 조현병 같은 환자들에게도 경찰이 범죄 발생이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범죄를 연구하는 나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사람에 의한 범죄는 법이 아닌 사람에 의해 예방된다. 어떠한 행위를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잣대도 그 사회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이너리티리포트(Minority Report) 영화 속의 프리크라임(pre-crime) 시대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범죄기준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무엇이 범죄가 되어야하는지, 무엇이 안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면밀히 해야한다.

2016년 우리사회는 안전했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횡령,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살해, 누군가의 학대를 보고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상당히 허술했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러한 스승들에게 전혀 고맙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속의 범죄는 우리를 슬프고 아프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오히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안전한 사회는 작은 아픔을 느끼고 작은 고통도 치료하려고 하는 사회이다. 권력이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른의 피해만이 아닌 아이들의 피해도 살펴야 한다. 남성이 아닌 여성의 피해와 고통도 살펴야 하고 사람이 아닌 동물의 피해도 잘 살펴야 한다.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존재가 안전한 사회는 이러한 살핌과 관찰이 전제된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시린 통증을 현재 진행형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큰 고통을 이겨내는 국민들을 보면서 그들이 앞으로 작은 통증에 둔감해질 까봐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사실 안전한 사회는 작은 엄살에서부터 시작된다. 법과 제도가 우리를 보호하기에는 충분히 촘촘하지 못함을, 법이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집을 지켜주지 못함을, 어른이 만든 법이 아이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함을, 어두운 밤거리가 내 안전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히 밝지 않음을, 우리 학교가 공부를 시키는 곳이 아닌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데 충분한 공간이 아님을, 내 직장이 나의 안정적인 생활을 충분히 지켜주지 못함을,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이 위태로움을 이야기하고 바꾸려 해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아름다운 그 말처럼, 남이 중하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안전이 우선인 것이다.

사람들이야 어떻게 느낄런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은 더욱 안전해 질 것이다. 발생한 범죄 사건수가 감소하여서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올해보다 더 많은 범죄 통계치를 받아보게 될 지도, 그래서 우리는 더욱 아플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수록 민감한 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고 아픈 만큼 우리는 더 민감한 사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쓸데없이 사회의 아픔을 인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프다고, 바꿔달라고,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주는 한해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아픈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다만 슬프기만 한 반면교사가 아닌 정면교사가 더 많은 해이기를 바란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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