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까지 합세해 매주 계속되는 집회 불공정·불합리한 사회체제에 대해 경고 시스템 정상화 위해 기존 정치 각성해야

차도(車道)는 자동차만 다니도록 만들어진 길이다. 사람이 차도로 내려서면 경찰관에게 적발돼 범칙금을 떼일 가능성을 감수하거나 자동차에 치일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차도에 토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돌아다니는가 하면 버젓이 앉아 구호를 외치고 이야기도 나눈다. 토요일마다 대전을 비롯해 서울 등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열려 온 촛불집회 얘기다.

차도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이유와 배경, 진행과정 등을 대부분이 알고 공감하고 있으므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관련된 숱한 분석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의 보행이 금지된 차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회를 열고 돌아다니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아 우리에게 힘이 있구나`라고 느끼는 정서라는 것이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정서를 느끼면 연대감까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일관된 주장이 이어진다면 당연히 정치적 연대감으로 발전한다.

토요일마다 열려 온 올해 촛불집회가 이렇게까지 간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양상도 양상이지만 그 국정농단이 참으로 어이없는, 어처구니없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실태를 장면만 달리하며 반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에는 적잖은 중·고생들도 참여한다. 참정권이 없고, 어른들이 보기에 아직 어려서 어린애들로만 보이는 중·고생들이 가방을 메고 대거 쏟아져 나오니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부모 선생님 교육청에서 말리고 간섭하는 일이 많았을 텐데, 그 길항작용을 이겨내고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이 매우 센 비선실세 부모를 둔 덕에 고3 한해 50여일밖에 출석하지 않고도 최하위권인 성적표를 들고 명문으로 꼽히는 여자대학교에 버젓이 들어간 것이 그들을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정규수업에 야간자율학습, 학원·과외까지 매일 12시간 이상 장시간 중노동 같은 공부를 지겹게 해도 들어간다는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수준의 대학을 입학한 것에 화가 치미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집어치우고 공정하게 하라는 요구를 서슴없이 한다. 경쟁이 치열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입시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신통하다. 공정하게, 결과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공정성은 공화주의(共和主義)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촛불집회가 열리는 차도에서 들리는 소리는 대부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요약하면 공화주의를,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에 어울리는 정치와 제도운영을 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일 때 집권당이면서 약칭으로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썼던 민주공화당 때문에 대부분의 세대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공화주의는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시민 없이 시민권의 권리와 책임, 윤리 등이 공정하게 작동되는 체제를 지향한다. 왕(王)이나 전제적인 개인이 권력과 제도를 사유화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참에 헬조선, N포세대 등으로 회자되는 구조적 현상을 싹 갈아엎자는 생각을 가진 20·30대 젊은이들이 촛불집회는 물론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현재의 정치체제까지 바꾸자는 주장까지는 하지 않는다. 넓게 보면 공화주의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대중들의 지향점, 심리를 가장 잘 포착하고 대변한 정치인은 현재까지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자치단체장에 불과한 그에 대한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아무튼 대중들은 공정하게, 민주공화국답게 정치를 하고 제도운영을 하라고 요구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계속할 기세다. 하지만 대규모 촛불집회가 기약없이 장기화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고대그리스나 10만 명 이상이 발의를 하면 무엇이든 국민투표가 가능한 스위스는 아니지 않나. 이후의 매듭풀기는 직업정치인들이 담당하는 게 온당하다. 하지만 주군을 모시고 주군의 뜻을 따르는 파벌정치에만 익숙하고, 대중을 지배·통제의 대상으로만 보아 온 정치인들이 현 시국을 잘 풀어나갈지는 의문이다. 대중들은 이제 `국민의 명령`이라는 말을 학습하고 익숙하게 외칠 만큼 정치적 각성을 했기 때문이다. 류용규 편집부국장겸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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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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