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이념에 美·英 중산층 분해 자신의 삶 여유 잃고 정치 무관심 커져 세계 이끌어 온 양국의 민주주의 위기

어느덧 2016년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뒤돌아보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나라 안팎으로 다사다난하고 힘든 시기였다. 특히나 국제 정세는 앞으로도 잠재적으로 엄청난 파국 효과를 지닌 사건 둘이 있었다.

지난 6월 23일, 영국에서는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겠다는 브렉시트를 통과시켰다. 영국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들도 브렉시트가 거부될 것이라고 보았으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국은 일찍이 1975년 노동당의 윌슨 정부는 국민투표로 자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물은 적이 있었다. 불과 유럽연합 가입 3년 만이었다. 이때는 65.5 퍼센트의 국민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그중 67.2 퍼센트가 잔류를 선택했다.

하지만 올해 재집권을 위해 국민투표를 선택했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론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호소하다가 재집권은커녕 의원직조차 내려놓았다. 게다가 그는 영국을 심각하게 분열시킨 장본인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되었다. "나는 한때 미래였다"고 그가 뒤늦은 회한의 한 마디를 했다지만 말이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브렉시트 반대자들도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자기 발등을 찍은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연 유럽은 "영국 없는 유럽연합"의 위기를 잘 극복해낼 것인가. 영국 또한 유럽연합 없이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영국과 유럽연합의 미래를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다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트럼프가 누가였던가. 끝없는 기행과 저질스러운 행동으로 과연 미국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있는지 많은 의문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심지어 공화당에서도 그가 대선 주자로 부적합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정견이라는 것도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예컨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마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놀랍게도 선거를 해보니 트럼프가 승자의 자리에 있었다. 선거 기간 중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이른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도 투표장에서는 과감하게 그를 찍었다. 낙후된 산업화 지역인 `러스트 벨트`의 몇몇 주에서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트럼프가 이겼다. 공장들이 국외로 빠져나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깊은 공감을 못했던 클린턴에게 복수의 칼을 빼어들고 투표장으로 향했다. 반면에 개혁 성향의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던 수많은 민주당의 젊은이들은 투표소에 가지 않는 우를 범했다. 대선에 참여할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처럼 미국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선거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트럼프를 `나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수많은 시민들이 곳곳에서 아직까지도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수상이 집권한 이후, 이 두 나라의 중산층은 처절하게 분해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지배하게 된 결과였다. 민영화와 국가 불간섭주의가 결합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극소수의 부유층과 절대 다수의 빈민층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두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서 위축된 중산층은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다수는 하층민으로 전락하면서 두세 개의 직업을 가져야만 생존이 가능한 가운데 삶의 여유를 잃고 더욱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졌다. 그리하여 선거에서 자신이 누구에게 권력을 위임해야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있으며, 기득권의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는 자신들에게 맡기고 관심을 끄라는 주문을 그들에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몰락한 중산층들은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차이가 별로 없는 양당제 속에서 `기권`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체제를 강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치적 경제적으로 세계를 이끌어 온 영국과 미국에 민주주의를 마감하는 조종이 울리고 있거나, 민주주의의 황혼이 찾아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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