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닉슨 '워터케이트 사건' 하야 朴대통령 촛불 민심에도 버티기 도덕적 가치로 대통령 선택해야

2015년 1월 어느 날이다. 한 시사주간지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소개하고 난데없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중 누구와 닮았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시 세월 호 사건 이후 아직 여론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필자는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는데 거듭되는 기자의 독촉에 박대통령과 리더십 스타일이 많이 닮은 대통령을 한 명 꼽았다. 바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다.

닉슨의 리더십 스타일은 한 마디로 독선적이었다. 그의 성장과정과 정치역정 속에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아내조차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장 개방적이고 소통을 필요로 하는 직업세계인 `정치`에서 닉슨은 `불신`하는 자신의 성격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위선`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투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폭로되기 오래 전부터 그렇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위선은 워낙 완벽했기에 미국의 유권자들은 그에게 표를 주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닉슨의 위선에 속았음을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믿었던 대통령과 정부로부터 배신을 당한 일종의 환멸감 같은 것이었다.

닉슨은 탄핵을 앞두고 하야를 선택했다. 이즈음 미국 국민들에게 뼈저린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월남전의 패배, 장기적인 불황, 그리고 가장 믿었던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고 헌법을 유린한 사건이 점철되어 있었다. 앞의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치유가 되어 갔다. 하지만 닉슨의 사임은 미국 국민들에게 좀처럼 치유를 하지 못하고 영원한 상처로 남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상처로부터 미국 국민들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가 우선 된다고 확인한 것이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국가를 성장시키고 국민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믿음 속에서 소통, 정직, 자유, 원칙 등과 같은 품격 있는 인류 보편적인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닉슨은 사임을 발표하는 그날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짧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나는 악당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악당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국민들은 또 다시 상처를 입었다. 1994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는 그날까지 닉슨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순실 사건 혹은 최순실 스캔들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다. 닉슨처럼 스스로 물러나기를 원하는 100만이 넘는 국민들의 촛불 민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앞서 밝힌 주간지 기자의 질문에 필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닉슨에 비교한 이유는 소통을 하지 않고 수첩에 적혀 있는 자신이 믿는 사람만 상대하는 것이 닉슨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현재 우리나라 역시 장기적 불황으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러했듯이 최순실 사건은 우리 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상처를 빨리 치유해야만 한다. 그것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능력보다 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제 헌법에 입각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다. 배신감, 상처, 분노 이런 것이 교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최순실 사건으로 입은 상처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아프지만 그것은 곧 치유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희망찬 미래가 있다.

김형곤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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