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한 참인 인근 시골마을로 귀촌생활이라도 구상해 볼까 싶어 나섰다. 내 깐에는 도심과의 거리도 따지고, 교통 편의성과 발전 가능성 등 여러모로 따져 선택한 조용한 동네로 들어섰다. 그런데 마을입구, 논 한 가운데 커다란 비닐하우스로 나를 이끈다. 닭이나 소, 돼지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는 계사, 우사, 돈사라고 해 건축물에 포함 되지만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는 아무리 규모가 커도 건축법상의 건축물은 아니다. 그러나 안내 받은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니, 우주공간 같은 큰 틀 안에 15평 정도의 목조주택이 버젓이 세워져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비닐하우스인데, 내부에는 그럴듯한 주택이 지어있다. 물론 불법건축물이지만 대지는 명의 이전도 가능하다고 자랑한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 주거형태의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찔했다. 이러니 매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많은 학생들이 이 분야를 떠나고,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하던 인부만 남게 된다. 주위를 살펴보면 적당히 건물을 짓는 버릇만 남아있고, 양식도 구조도, 심지어 법규도 무시한 채 필요하면 그냥 짓는 것이 현실이다. 농촌이던, 도시이던 무허가 증개축 부분이 없는 세대가 없을 정도이니 이를 관리, 단속하기가 힘이 든다.

보문산 청년광장 주변에 시각장애인 보행연습 길이 있다. 일상에서 보는 도로변에 자동차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가이드 레일이 있고, 육교나 계단의 난간에 보행자의 안전을 위하여 설치해놓은 핸드 레일, 즉 손스침이 있다. 여기에도 기본이 필요하다. `레일`이라함은 연속성이 있어야 함에도 재료가 아까울 정도로 꼬아 모양을 내어 기둥을 세우면서 상대(파이프)를 간격별로 잘라 놓아, 손을 잡고 갈 수 없다. 그래서 손스침의 기능을 못하니까 이는 시공자의 무지로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 경우다. 이렇듯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한 도시 디테일은 결과적으로 도시 전체적인 흐름을 틀리게 한다. 이에 기초가 무너진 건축에 대한 대중의식을 처음부터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집을 지으려면 적법하게 처음 기초부터 벽돌을 쌓아야지, 지붕부터 쌓아 내려온 건축물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삶의 터전인 건축은 처음부터 올바른 걸음으로 끝까지 가야 하는데, 우리는 대충 뛰어가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절차에 따라 늦게 온 사람을 비웃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후대에게 남겨질 수 있는 기초가 튼튼하고 원칙이 선 건축물을 만들어 나가자.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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