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는 팔십일, 칠팔 오십육…. 초등학교 시절 익혔던 구구단은 지금도 기억 저편에서 술술 기어 나온다. 지금은 구구단이 아닌 18단을 외워야 한단다. 유년기적 감아두었던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면 술술 기억 저편에서 달려 나와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먼 데이, 투스데이, 제뉴어리, 페브러리…. 요일 이름과 달 이름을 영어로 외우던 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가.

`젖니 같은 새순 피워내는 봄`, `진달래 뒤를 이은 개나리 노란 리본 달고 재잘거린다`, `별을 따며 동무들과 멱 감던 개울`, `이제사 구월이 문턱을 넘었는데 꽃 단풍 술 취해 오르고`, `의붓자식같이 고독해 보이는 11월` 등 편지글로 썼던 계절 인사말도 기억 속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다.

`실전에 웃고 싶거든 연습할 때에 많이 울어라`, `펼치지 않은 책은 나무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등 청소년 시절에 익혔던 짧은 명문장들은 또 얼마나 정겹게 나를 휘감는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 친구분이 타고 오셨던 자전거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랑에 들어 아버지와 한 잔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그분의 자전거를 몰고 개울둑을 신나게 달렸다. 앞가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을 폐부 깊숙한 곳에서 느끼며 태양이 제 집 찾아가는 시간도 잊은 채 즐겼던 자전거 타기. 그 때 그 실력은 지금도 두 건각 사이에 그대로 잠자고 있어 언제라도 불러내면 훈련병의 그 늠름한 자세와 우렁찬 음성을 동반하고 달려 나온다.

공백기가 아무리 길어도 그 능력은 그대로 발현되어 나를 기쁘게 한다. 운동 선수가 하루만 연습을 게을리 해도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던 것들이 요즘은 부쩍 건망증이란 불청객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조금 전에 생각해 두었던 것 들이 장기 국외 출장이라도 떠났는지 희미한 파편 한 조각도 건지기 어렵다.

중요한 전화를 걸어야 하는 것을 잊어 낭패를 본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약속 날짜를 메모해 놓지 않고 지내다가 그냥 지나쳐 송구한 마음을 가졌던 일은 또 한두 번이었던가. 건망증(치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두뇌를 비롯한 온몸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단다. 무료하게 그냥 앉아있을 게 아니라 하나에서 백까지 세어보기를 수 차례 한다든지, 아는 노래를 머릿속으로 불러 본다든지 꽃 이름, 강 이름, 산 이름을 읊조려 본다든지, 가족 친지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기가 아닌 고스톱, 민화투도 해볼 만한 것이 아닌가.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것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주 작은 일도 메모를 하여 기억 속에 붙잡아 매 두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를 사귄다든지,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스포츠를 즐긴다든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다든지, 수다를 떠는 방법도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마음의 양식을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책을 읽는 일까지….

내 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붙어 있는 센서. 고장이 난다면 바로 수리해야 한다. 고장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름칠 하고 닦고, 조이는 일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리라. 고장 난 센서를 그냥 방치하면 수리 불능 사태까지에 이를 수 있다. 부품 몇 개 바꿨다고 신차가 될 리는 없겠지만 그냥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힘줄 굵었던 시절의 사내 음성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렇지 않아도 늘 봉황을 그리지 못하고 잡새들만 그리면서 보낸 것에 대한 후회가 막급한 데 지금의 나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센서까지 고장이 난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센서 수리점에 들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 의지는 중병도 고칠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불현듯 찾아온 건망증 즐거운 삶이 최고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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