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정조사서 앵무새 답변 모든 진실 캐내어 밝혀야

호기심 많은 다섯 살 꼬마는 `팔각성냥통`이 신기했다. 울타리와 돼지우리 사이는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마른 짚이 깔려 있었다. 옆집 한 살 어린 동생과 성냥을 가지고 놀기에는 제격이었다. 결국 불은 깔려있던 짚을 태우며 돼지우리에 옮겨 붙었다. 꼬마들은 엉금엉금 기어 나왔고, 돼지는 `꽥 꽥`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소방차가 출동하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오십여 년이 흘렀지만, 필자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놀란 기억이다.

지각된 자극이나 학습되어진 인상들을 저장 유지하고 재생하는 정신기능을 `기억`이라 한다. 이것의 능력이 탁월할수록 지적기능이 높은 게 일반적이다. 개체 간의 능력차는 있겠으나 이 기억처리 기관은 젊은 나이일수록 왕성하고 활발하다. 이 기억창고에 메모리능력은 저장, 유지, 회상, 재인식의 요소로 구성돼 있고, 장기기억 단기기억 등이 있다. 또한 강력한 자극은 사건과 사물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감작요소로 작용해 인간이 사망할 때까지 오랜 기간 기억하게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강력한 자극이 되레 기억을 순간적으로 지워버리기도 하니 오묘하다. 사건이나 사물을 기억하기 싫은 것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꼭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그리 믿을 게 못된다. 통상적으로 오래된 기억은 새로운 것에 밀려 서서히 잊히고 `망각`이란 절묘한 조절로 지워지게 돼 있다. 이게 오묘한 인간두뇌의 저장기능이며 제한된 저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기억통제 방법이다. 이렇듯 우리는 망각이라는 정신조절기능으로 뇌가 편안해질 수 있기도 하다. 하긴 그래야 복잡한 머리가 조금이나마 쉴 수 있으리라. 이런 이유로 대개의 사람들은 어린 시기나 오래된 기억은 거의 옅어져 기억이 없거나 생생하지 않고 흐릿하다. 필자에게 남아 있는 `방화범의 기억`은 아마도 강력한 자극으로 충격이 커 각인되다시피 기억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가장 수난을 받는 단어가 아마 `기억`일 거다. 매스미디어에 연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란 문장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널려 있다. 국정조사 기사에는 거의 도배 수준이다. 대개 기억은 지능의 척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재적인 기억력과 높은 지적수준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 분수에 맞는 일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 관료, 국회의원, 국무위원, 재벌 총수 등은 기억력이 탁월하고 지적능력이 검증된 자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하다.

하지만 그들이 요즘 죄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른다`의 두 말만 앵무새처럼 하고 있다. 실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인간들이 나라살림을 한 것이고, 둘러대기 위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파렴치한에게 국정을 맡긴 것이니 이래저래 국민들만 등신(等神)이다. 여러 겹의 가면 쓴 파렴치한들이 겸손한 척 자신은 멍청이라고, 피해자라고, 선하다고 만천하에 떠들어대고 있다. 그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방자하던 그들이 연일 자신이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읊고 있으니 헛웃음만 나온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기억이 희석되어 잊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극도로 고통 받았던 수많은 일들을 일련의 회피의식으로 망각해 되풀이하곤 했다.

속아선 안 될 일이다. 잊어선 더욱 안 된다. 용서가 미덕이 아니며 겸손과 존중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악의 소굴을 소탕하듯 잔뿌리 하나도 샅샅이 캐내어 모두 밝혀야 한다. 전부 파헤쳐 일벌백계하고 상처 나고 응어리진 가슴 치유해야 한다. 예절과 도덕을 중시하고 아픈 기억을 금세 잊어버리는 예의바르고 관대한 민족이지만, 이번만은 두개골 전면에 각인해 절대로 쉽게 잊어선 안 된다. 생생하게 기억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도록 해야 한다.

강명식 푸른요양병원장·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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