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미스 어니가 들어간 지역은 프랙푸드족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였다. 프랙푸드족은 코만치 수우족들과 함께 텍사스지역에서 가장 사납고 위험한 부족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몇 년 전 만해도 그들은 백인이 경영하는 목장을 빈번하게 습격했었고 이틀전에도 백인마을을 습격한 부족이었다. 그때 서른 명의 인디언 전사들이 백인마을을 습격했다가 백인 수비대의 반격으로 여섯 명이 죽고 네 명이 중상을 입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날 다시 복수를 하겠다고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판에 백인 여기자가 나타났다. 상대가 여자라고 해서 가만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여기자는 무기는 갖고 있지 않았으나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카메라는 찍힌 사람의 영혼을 뺏아 사진으로 나타낸다고 알려지고 있었으니 그건 총과 같은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일부 전사들이 대뜸 창으로 그녀를 찔러 죽이겠다고 설쳤으나 그때 프랙푸드족 추장의 아들인 백마의 용사가 나서 여기자를 죽이겠다고 전사들을 말렸다. 백마의 용사는 인디언들에게는 잘 알려진 지도자였으며 그가 백마를 타고 전사들을 지휘하는 부대는 가장 용맹한 부대로 알려지고 있었다.

추장의 아들 백마의 용사는 그 여자를 본부로 데리고 가 추장이 직접 조사를 한 다음 그때 죽여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자를 포박하여 데리고 갔다. 본부에서는 열 명쯤 되는 부족 장로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여기자는 자기는 여기자이며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싸움을 공정하게 보도하여 그 지역의 평화를 만들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자의 그런 주장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신문사가 뭣인지 신문기자가 뭣인지도 알지 못했고 그런 기사로 그곳의 싸움이 중단되고 평화가 온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추장은 그녀를 인디언 마을에 와서 인디언들을 해칠 인물이라고 단정하고 감옥에 보내 며칠 후에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사람의 영혼을 뺏는 물건인 카메라도 몰수되어 그 자리에서 파괴되었다.

신문기자 미스 어니는 그때 비로소 인디언들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았으나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았다. 그녀는 꽁꽁 묶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감옥이라는 곳이 한 평도 되지 않는 우리였다. 그녀는 이틀 후에 처형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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