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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식 칼럼] 배신의 종착역

2016-12-08기사 편집 2016-12-08 05: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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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위임한 권력 사적 사용 현직 대통령이 비리 몸통된 상황 개인·국가 모두의 치욕이자 불행

'배신'이라는 말은 약속 등을 저버리거나 등 돌리는 행태를 가리킨다. 원칙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인다는 의미에서 이런 행태를 저지른 사람을 배신자라고 부르고 꼬리표를 달아준다. 배신당한 사람이 느끼는 격한 감정이 배신감이다. 분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무자비한 보복을 그리며 이를 간다.

한때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쓸모 없게 돼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세태를 비유 한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섰으나 집권 후 추진된 공직자 재산공개 때 축소 신고한 사실이 드러나 의원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 말이다. 7선 국회의원에 국회의장까지 지낸 인사가 내뱉은 감정이어서 화제가 됐었다.

배신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는 요즘 배신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간추려 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왕권을 잡았고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배신 왕위에 올랐다. 전봉준은 부하의 신고로 관군에 붙잡혀 교수형에 처해졌고 이완용은 국가와 민족을 배신 당대에는 호사를 누렸으나 매국노로 역사에 길이 낙인이 찍혔다. 김좌진은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고 김구는 안두희와 비호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박정희는 배신과 반란으로 대통령에 올랐지만 심복의 배신으로 막을 내렸다. 전두환은 상관 정승화 총장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권력을 잡았지만 '동지'노태우의 배신으로 백담사에 유배됐다.

이처럼 배신과 반역의 역사가 끊이지 않으면서 비정상적으로 득세했지만 승리한 사람이 정당화되고, 속수무책 당하는 상관이나 책임자, 어느쪽이 유리할까 저울질 해보는 기회주의자, 정상적인 계통보다는 능력있는 배신자에게 달라붙는 아첨배 등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상을 수없이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심복에게 배신당한 기억과 아버지에게 혜택 받은 사람들이 등 돌리는 것을 보며 '배신의 분노'가 쌓여 트라우마가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 처리한 일에 대해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발언한 것은 그가 '배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일반인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논설위원

그런 그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되며 배신감에 분노를 터뜨리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곁을 지켜줬다'는 개인의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키며 어떤 이야기도 못하게 하고 들으려 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눈감고 감싸다 탄핵, 하야, 특검수사 3각 수렁텅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 검찰의 수사 결과 피의자 신분이 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내일 국회에서 박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한다. 가결되면 곧바로 직무정지이고 부결된다고 해도 직무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와 가족도 없는 만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 그였지만 사실상 식물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다.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자 여성 대통령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무능'과 '불통의 아이콘'으로 조롱당하고 있다.

모든 현상에는 징후가 있다. 지혜롭지 못하면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는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하고싶은 일은 무턱대고 밀어 붙이고 반대하면 표독스럽게 밀어내니 덕이 없는 사람이 됐다. 주위에 측근을 많이 두고 사사로운 것을 너무 심하게 챙기다보니 국민들의 신의를 잃었다. 이런 국민앞에 나서서 진정성 있게 사죄를 해야 하는데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거부하는 등 말 뒤집기로 신뢰와 용서받을 기회를 잃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롭게 사용하는 배신행위를 하는 사이 '불행의 여신'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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