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선진국, 대통령 모든 일정 공개 무소불위식 수직적 구조 문제 많아 수평적 역할 분담이 민주주의 기본

독일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본 사람은 깜짝 놀란다. 너무나 쉽게 의사당에 들어갈 수 있으며 누구나 쉽게 의사당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투명한 유리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실제 의회가 진행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정치를 숨김 없이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아래의 국회의원을 감시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을 상상하고 영국 의회를 방문해 본 사람은 의외로 협소하고 소박한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 안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현장을 보면 존경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의원들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서 총리의 발언을 듣고 즉석에서 질문하고 총리는 답변을 한다. 대표나 중진의원이 앞좌석에 앉으며 초·재선의원은 뒤에 서서 듣는다. 그래도 발언은 스스럼없고 자신에 차 있는 모습이다. 논쟁은 언제나 진지하고 치열하되 나이나 성별, 여야에 관계없이 의원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은 가장 오래된 근대 의회 정치의 표상다운 모습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미국 백악관 사이트를 방문해 클릭 한 번이면 오바마 대통령의 일과가 매일 드러난다. 일례로 지난 11월 17일 임기 마지막 유럽 순방 중이던 오바마 대통령이 베를린에 도착한 시간부터 메르켈 총리와의 비공개 면담과 기자회견까지 밝혀 놓고 있다. 비공개 일정도 세부적으로 표시하고 장소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추수감사절 연휴처럼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은 없다고 밝힌다. 언론이 궁금해 하면 대통령의 비공개 행적을 취재하는 데도 백악관은 적극 협조한다. 프랑스도 엘리제궁 사이트에 대통령 일정을 시간대별로 공개한다. 일본도 총리관저 사이트에 아베 총리의 일정을 밝히지만, 총리의 전날 행적은 언론에 더 자세하게 드러난다. 일명 `소리방` 총리 전담 기자들이 24시간 일거수일투족 동선을 밀착 취재한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분 단위로 일정을 공개한다. 휴일도 예외가 없다. 토요일 오전에 관저에 머물다가 치과를 가고 운동을 했다는 시시콜콜한 일상도 밝힌다. 권한으로 비교하면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의 `반의 반쪽` 대통령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부하직원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한다. 의회의 인준을 받아야만 임명이 가능한 자리가 무려 1000여명이 넘는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는 한국과 달리 법률안제출권도 없으며 행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의회가 만드는 세출법이야말로 어느 항목에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지출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말로 풀어 쓴 법률안으로 행정부에 대한 미세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미국 대통령은 연방 판사 전원에 대해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할 수 있다. 그것도 한번 임명되면 종신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인사를 이유로 판사가 휘둘릴 이유가 전혀 없다. 미국 대통령은 그 어느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그들인들 사람이 좋아 선의로 이렇게 되었을까? 영국 총리도 의회에서 오랫동안 서서 답변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 의원들도 자기 머리 위에서 국민들이 내려다보는 것 원치 않았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 총리도 국회에서 곤란한 질문 받으며 사생활도 없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권력에 대한 끈임 없는 감시와 견제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담당자에게 더 이상 `선의`를 요구해서도 안 되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세종 같은 성군을 기대하는 전근대적 사회는 이미 지난 지 오래되었다. 선의로 포장한 수직 구조는 다양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기능 할 수 없다. 수평적 역할 분담과 권력·영역 분점이야말로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윤활유이다. 한 사람의 무소불위식 수직 구조는 불가능하다. 권력의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다.

성선제 고려대 초빙교수·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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