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노후준비 지름길 말기암환자 80%이상 혜택 공공의료기관 사업 독려를

"외래갈 때 병원은 가야하지, 택시는 없지, 진짜 눈물 나더라고요. 혼자 갈 기운은 없고. 또 택시에서 뭔 일 생길까봐 겁나고, 옆에 누구 있으면 택시에서 기절을 하건 뭘 하건 병원엔 데려다 줄 거 아니에요. 정 힘들 때 SOS 칠 데가 있었으면…."

말기암을 진단 받고 가정에서 홀로 지내던 40대 여성의 하소연이다. 말기 상태에서도 통증 조절을 위해 주기적으로 마약성 진통제 등을 처방받아야 했지만, 친정 가족들도 다들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대신 약을 타다 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홀로 장애아를 키우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그녀에겐 매번 이용하는 택시비도 큰 부담이었다.

천안 시내 임대아파트에 거주 중인 여성노인이 심한 호흡곤란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 집안에는 이런 저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봉지가 쌓여있고 그 중에는 호흡곤란에 사용하는 흡입용 기관지확장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각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흡입제도 사용법을 몰라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나마 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자 약물부작용으로 생각한 자녀분의 권유로 약을 모두 끊은 상태였다.

실습 차 방문한 간호학생들이 부작용을 초래한 약을 변경하고 흡입제만 제대로 사용하더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알려드리자 당장 변화가 생겼다. 이틀 후 학생들이 다시 방문했을 때는 벌써 자녀분을 불러 근처 의원을 다녀오신 상태였고, 학생들의 도움으로 흡입기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셨다. 호흡곤란이 조절되자 어르신은 침상을 벗어났고 학생들과 근력강화 운동까지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가정방문에서 만난 말기환자나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적 도움은 대개 반복 투여되는 경구약물 처방, 가정에서 시행할 수 있는 간단한 신체검진이나 의료 처치, 돌봄 관련 정보 제공이나 교육 등이다. 이를 위해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큰 돈 들여 택시나 구급차를 부르고, 때로는 가족까지 휴가를 내어 외래를 방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조절은 충분치 않고, 간병에 필요한 정보나 교육도 턱없이 부족하다. 아프고 불편한 사람이 꼭 그렇게 힘들게 멀리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가야 하는가? 건강하고 이동도 용이한 전문가가 아픈 이를 찾아가는 게 더 인간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가?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론이야 어떻든 현실적으로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는 방식 외에 다른 시스템을 경험해 보지 못한 까닭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전문가의 가정방문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 않겠냐고, 현실성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역과 가정에 기반을 둔 의료와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통합적으로 제공될 때 효과적이며, 이 때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80% 이상의 말기암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올해 3월부터 17개 기관에서 말기암 가정호스피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데, 본인부담율 5%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모두 방문하는 경우에도 1회 방문료 본인부담금은 1만 원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다. 외래방문 시 택시비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가정에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2015년도 전체 사망자 중 27.9%가 암으로 인한 사망이고, 대다수 말기 암 환자가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외래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가정호스피스 본격 시행 시 많은 말기암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급여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들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가정호스피스 제공을 꺼릴지도 모른다. 이 때, 공공의료기관들이 이런 사업을 적극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다른 말기질환자와 노인들까지 가정에서 필요한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준비해 나가는 것이 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평범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노후 준비가 아닐까 싶다.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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