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비리 얼룩 신물 탄핵·개헌 투트랙으로 가야 새 헌법으로 새 지도자 선출

대통령 퇴임식 전야제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은 손에 꽃을 들고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찬다.

마침내 대통령이 등장하고 대국민 인사말로 행사가 끝날 무렵 참석자들은 저마다 아쉬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대통령을 향해 꽃을 던진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을 연일 뜨겁게 달구는 촛불민심은 그런 지도자를 간절히 원하는 속내의 표출이다. 임기 동안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떠나는 지도자라면 국민들은 촛불 대신 기꺼이 축제를 열고 꽃을 바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첫 과반득표(51.6%)로 당선했다. 역대 대통령이 개인 및 친인척·측근 비리로 하루 아침에 절대권력에서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한 처참한 말로를 지켜본 터라 그의 정치적 자산인 약속과 신뢰에 거는 기대감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직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백지위임했다. 스스로 하야하지 않은 이상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길은 탄핵과 개헌 두 가지 방법뿐이다. 새 헌법에 단축된 임기를 명시해 퇴진토록 하는 개헌 퇴진론을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고 야당은 원치 않고를 떠나 대통령은 조기 퇴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탄핵으로 가더라도 개헌은 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1인에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구조를 과감히 뜯어고치라는 시대적 요청이 담겨 있다.

이제 범죄와 대국민 사과, 자살, 탄핵으로 신물나는 오욕과 수난의 대통령사에 종지부를 찍고 더 나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 개인의 과오와 대통령 1인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구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개헌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것이다. 호헌 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던 6.27 민주항쟁 이후 다시 타오른 `박근혜 하야 촛불`은 바로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절박한 외침이다. 이제 개헌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 들여야 한다. 개헌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게 타이밍이다. 30년 만에 주권을 가진 국민이 정국의 중심에 선 이 시점이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정치권은 역사와 국민 앞에 죄인이 된다는 절박함으로 개헌 모드에 돌입해야 한다. 탄핵과 동시 추진하면 최상이지만, 탄핵 후에라도 좋다.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대선 프레임이 본격적으로 짜여 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개헌은 정국 수습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노태우 대통령도 1987년 개헌 약속으로 정국을 진정시켰고, 재임 중에 개정한 헌법으로 대선을 치러 당선됐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복원하고, 국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도 대통령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제안한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여야가 죽기 살기식의 정쟁을 일삼는 것도 승자독식의 권력구조 때문이다.

개헌을 위한 국회 본회의 가결처리 조건도 갖췄다. 20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회원수가 이미 200명을 넘어섰다. 야권의 일부 대선후보를 제외하고 여야 원내외 주요인사들 대다수도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주저 말고 국회개헌특위를 가동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이라는 권력구조 개편에만 급급한 측면이 있다. 30년 전에 비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이 성숙했고, 사회도 크게 달라졌다.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면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합리적이다. 새 헌법은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산해 견제와 균형을 합리적으로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헌법은 통치구조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규범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새 헌법 아래 선출된 차기 지도자가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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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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