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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송종관 서예가

2016-11-28기사 편집 2016-11-28 06: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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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오디세이] "창작은 흉내 낸다고 될일 아냐… 철학 확립돼야 독특성 발휘"

첨부사진1송종관 서예가는 "서예는 기능뿐만 아니라 심성과 철학이 조화될 때 완성될 수 있다"며 이론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경부 송종관 선생은 우리나라 서단에서 탄탄한 실력과 이론을 겸비한 대표적 서예가로 손꼽힌다. 오체가 융합된 초서는 혼합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질서로 승화돼 선생의 정신과 감정을 한 차원 다른 서품(書品)의 경지로 끌어 올린다. 심성과 기법, 철학이 서격(書格)을 만든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다. 서예가뿐 아니라 성균관 전의, 대학 강의, 집필, 미술관장 등으로 동분서주하는 선생의 서예 세계를 만나봤다. 송 선생은 "서예는 무생물인 지필묵을 활용해 생명체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라며 기본에 충실한 창작을 강조했다. 충청의 후학들을 향해선 "이론이 없는 서예는 사상누각"이라며 기능 연마와 더불어 이론 공부에 충실해줄 것을 당부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 근황이 궁금하다.

"늘 바쁘다. 요즘 삼척미술관도 가고, 강의 다니랴 1주 일을 하루같이 보낸다. 활동을 줄이고 싶은 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 서예입문 동기를 들려 달라.

"초등학교 졸업 뒤 한학을 했다. 유학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영향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명심보감'을 매일 한 장씩 써서 가르쳐 주셨다. 그런 뒤엔 서당을 나갔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를 2년 늦게 진학했는 데 한문과 글씨에서 나를 따라오는 학생들이 없었다. 각종 대회에서 온갖 상을 받으면서 실력이 더 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서예관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기본은 유가(儒家)다. 중국 서예계에서는 나를 '유가 서예가'라고들 한다. 성장한 뒤 다른 종교에도 기웃거려 봤는데 제 이상은 아니었다. 다시 유학의 길로 돌아와 정진했다. 유학의 사상과 철학을 서예에 이입하고자 했다. 그런데 서예를 깊이 있게 연구 할 수록 유학정신으로만 서예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결국 기초는 유가정신으로 하되 도가철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노자'와 '장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유가를 바탕으로 도가의 자연주의 옷을 입혀 나만의 독특한 예술성을 발휘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할까."

- 최근의 작품 세계는 이전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데.

"오직 마음공부의 일환으로 글씨를 대했다. 붓으로 재주 부리는 건 싫다. 기본에 충실해왔다. 다만, 서체는 서예의 꽃이라는 행초(행·초서)를 신나게 쓰고자 한다. 모든 서체가 집대성되어 있으려니와 작가의 정신이나 회포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예의 최대 가치는 작가정신이 얼마나 진솔하게 배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형태적 가치 보다 신채(神彩)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행초에 더욱 정진하면서 5체(전·예·해·행·초서)를 모두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체의 혼합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이치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서체마다 그 기법이 있다고 하지만 전서 속에 초서가 있고, 초서 속에 전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멈출 수 없는 작업이다."

- 서예가로서의 일상은 어떤가?

"과거에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하여 심신 수양을 강조했다. 제가 아무리 연구하고 살펴봐도 작가의 수양이 작품의 품격을 좌우하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아침에 유가의 '심경'과 불가의 '금강경"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기능 숙련은 다음이다. 하루 1000자 이상씩 꼭 쓴다. 체력 단련을 빼놓을 수 없다. 필드에는 못 나가도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골프채를 휘두른다."

-많은 대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는 데.

"좀 줄이려 하는 데 잘 안되네. 유학인으로서 성균관 전의와 청주향교의 장의를 맡고 있다. 서예계에서도 나이가 들다 보니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이나 서예비엔날레 총감독 같은 이런저런 일을 시킨다. 한 달에 최소한 1차례 이상 초대 및 작품전이 열리기에 준비하느라 바쁘다. '월간 서예'와 '월간 묵가'에 서예 이론 연재를 해야 하고, 출강과 특강을 소화해야 한다. 연구실로 찾아오는 연수생을 가르치는 데 소홀해선 안된다. 한국 서예계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이론 공부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이론을 모르면 창작의 방향을 잡기가 힘들다. 젊은이들은 선배들의 결과물인 형태에 집착하는 데 이래선 발전이 안된다. 이론을 바탕으로 창작의 원리를 파악해야지 흉내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물론 초학자라면 베껴 쓰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우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잣대가 이론이다. 나는 선생님이 글씨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말씀을 꼭 책에서 확인하기를 즐겼다. 중국 여행을 가도 책방을 먼저 가는 버릇이 생겼다. 책을 이해하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이해가 빠르고 내 갈 길이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 철학이다. 철학이 확립돼야 작품의 독특성이 발휘된다. 서예가에겐 기능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깨닫게 됐다. 또 이론 탐구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내가 한양대에서 동양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유다."

- 충청 출신으로서 서울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

"청주 촌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 서울에 와서 경제적으로 곤궁했고, 인맥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는 있었다. 다행히 선생님을 잘 만났다. 일중 김충현 선생과 초정 권창륜 선생께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다. 선배들이 잘 대해줘 이 자리에 왔다. 서울로 인도해준 청주의 김동연, 대전의 이곤순 선배에게 감사 드린다."

- 강원도 삼척시에 최근 미술관을 건립했는 데 계기를 들려 달라.

"사실 나는 삼척 시절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곤궁하게 살던 30여 년 처가가 있는 삼척으로 낙향 아닌 낙향을 했다. 그 곳에서 5년 동안 서예를 가다듬어 기반을 닦고 다시 상경했다. 태어난 고향은 청주지만 서예 인생의 고향은 삼척이다. 마침 처남의 부탁이 있었다. 땅을 기증할 테니 문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삼척에 미술관을 지어 작은 보탬이나마 되어 달라는. 그래서 환갑, 진갑 다 넘은 나이에 집사람 손에 이끌려 삼척에 다시 가게 됐다. 사실 집 사람이 제 보호자다. 처음에는 제가 가족을 잘 부양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되레 내가 피부양자 신세가 된 셈이지."

- 서예 외길을 걸으며 가장 기억나는 일이 뭔가?

"어느 날 문득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기분을 1주 일 이상 끌고 가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젊어서 삼척과 서울을 오갈 때 일이다. 국전에 떨어져 낙담한 끝에 만취해 대관령을 넘다 보면 지치고 지친다. 그런데 좌절의 끝 자락으로 가보니 낙선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시 정진해 새롭게 도전하자는 힘이 생겼다. 상을 타고 대관령을 넘어보니 그 또한 별게 아니더라. 좋든 싫든, 잘되든 못되든 다 한 때 일이다. 이를 즐기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장거리 버스에 시달리면서 인생철학을 배웠다 고나 할까."

- 앞으로 활동 계획은?

"아직은 서울에서 더 정진해야 할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외부 활동을 줄이고 싶지만 지금 껏 연구한 걸 후배들에게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겠나. 당분간은 작품 발표와 함께 서예 전문지에 한국 서예정신에 관한 글을 연재해야 할 듯 하다."

선생은 '충청의 젊은 서예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해달라'는 대목에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도록 보다 이론 책을 구하는 데 더 힘썼으면 한다"며 "감상적으로 보아 좋아 보인다는 게 나쁠 건 없지만 그 이전에 자기 작품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목을 넓히고 좋은 게 있다면 남보다 빨리 수용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집만 부릴게 아니라 진정한 학구적 고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로 들렸다.



◇송종관 서예가는

서울 인사동 인근에 있는 연구실 현판의 '무심서학회'(無心書學會)라는 글씨에 송종관 선생의 삶과 지향점이 농축돼 있다. 지금은 청주와 합쳐진 충북 청원에서 자란 선생은 청주 무심천에서 무심을 건져와 수구지심을 알린다. 서학에는 이론을 중시하는 선생의 철학이 담겼다.

어릴 때 자연스럽게 고전을 접했고, 붓을 잡았다. 젊은 시절 운곡 김동연, 장암 이곤순, 현강 박홍준 등 충청 서예인들과 '청서회'를 매개로 깊이 교유하다가 30대 초반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서예가의 길을 걷는다. 스승이 당대 최고인 일중 김충현 선생과 초정 권창륜 선생이다. 가난과 고초는 지나고 보니 서예 인생의 자양분이었다.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1983년 처가의 고향인 삼척에 칩거하며 서예를 보급하고 교육했다. 오늘날 경부를 만든 시간들이다. 부인 심연 윤혜진 여사도 남편의 범상치 않은 인생이 궁금해 붓을 잡아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으니 부창부수다.

이론에 갈증을 느껴 지천명의 나이에 대전대 서예과에 진학해 친구인 송암 정태희 교수에게 배웠다. 한양대에서 논문 '조맹부의 송설체와 한국 서예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자 이론가다.

이력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제1회 서화아트페어 최우수작가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 2015년 부산서예비엔날레 총감독이 대표적이다. 성균관 전의와 일중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 중이고, 성균관 청년유도회 중앙회 부회장, 충북도 본부장, 한림대 외래교수를 지냈다. 또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과 청주향교 명륜서학회, 덕성여대에 출강한다.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책임학술연구원이나 학술지 '무심연묵' 발행인이라는 직함에서는 학문적 성취가 읽힌다. 서예 전문지의 유명 집필가이기도 하다.

최근 삼척에 가는 일이 잦다. 지난 10월 개관한 송종관미술관에서 머문다. 선생은 '속진잡사투란상 분전탐구속세전'(俗塵雜事投瀾上 墳典探求俗世傳)이라고 노래한다. '속세의 잡된 일 파도 위에 던지고, 성현의 글 탐구해 세상에 전하며 살겠다'는 다짐이다.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발전에 작으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게 또 하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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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어수선한 세상에 내놓은 선생의 휘호는 초서로 담아낸 事必歸正(사필귀정)이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서예도 처음에는 이 것 저 것 시도해 보지만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승화되는 것"이라며 "인생도, 세상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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