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 배척하는 엄한 상황 소추안 발의되면 민심역류 어려워 '데드록' 정국 풀 해결사 나왔으면

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대통령 탄핵정국의 불판이 달궈지고 있다. 야당 천하가 된 국회가 그 준비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탄핵시계의 시분침이 빨라지고 있어 디데이도 멀지 않았다. 빠르면 내달 1, 2일이 거사 날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핵은 위법한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시키는 헌법적 법리 작용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또 다시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 청구에 몰리게 된 것은 비극이다.

탄핵은 촛불민심을 정치권이 수렴할 수 있는 최대치다. 국민에 맞서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하야에 버금가는 결과를 합법적으로 도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일사천리로 끝을 볼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탄핵안 발의는 어렵지 않으나, 국회 본회의 가결이라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여야 의원 불문 20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데, 야당 전체 표는 이에 못 미쳐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최소 29표가 동조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다는 분석과 장담 못한다는 관측이 양립해 예단하기가 힘들다. 국회법상 무기명 투표를 하도록 돼 있는데 기명투표 방식으로 고치겠다는 야당 움직임도 만일의 사태에 대한 고민이 깊다는 방증이다.

다음 고비는 헌재 판결이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탄핵이 확정된다. 여기서 변수는 헌재소장 등 2명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재 심리가 늦어지면 남은 7명이 탄핵심판 청구를 다뤄야 한다는 점과 이 7명이 탄핵 심리 정족수라는 점도 걸린다. 1명의 신상에 변화가 오면 심리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헌재의 최종 확정 판결은 대통령직 파면을 뜻하는데, 그러다 보면 내년 12월 대선 전에 끝을 볼지 이후에 끝을 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탄핵 추진은 엄중하다. 특히 1차 관문인 탄핵안 국회 통과는 곧 대통령 직무 정지로 이어진다. 청와대 퇴거 단계에 이르지 않을 뿐 죽어있는 목숨과 큰 차이가 없다 할 것이다. 12년 전 노 대통령은 그렇게 63일 동안 유폐되다시피 했지만 이번 경우는 질적으로 비교 불능이다. 생환가능성은커녕 탄핵 확정이라는 `확인사살` 절차만 남겨둘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민심의 탄핵을 받은 지 꽤 됐다. 이 상태로 자리를 보전해도 예전의 대통령 권능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이유와 곡절이 없진 않을 것이다. 대통령 직위는 검찰수사는 물론이고 이후의 특검 수사 때 훌륭한 외피가 될 수 있다. 그 외피를 벗게 되는 순간 일체의 프리미엄은 사라진다. 이 지점에서 오는 공포감에다 자존감 추락, 그리고 다시 시민사회로의 복귀 문제까지 겹쳐 고뇌와 회의감이 증폭되고 있을 듯하다. 모든 게 대통령 자업자득이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민 여망을 좇아 대통령이 결단해주면 좋지만 거부의사를 꺾지 않아 탄핵이라는 외통수를 자초한 게 맞다.

대통령은 항장(降將) 처지다. 국민 신뢰도 잃고 정권 창출 모태인 당도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앞세워 연민의 윤리 따위를 들먹인다면 감정의 사치일지 모른다. 다만 한가지 대통령 유고 또는 궐위 정국으로의 전환에는 상당한 국가적 부담을 잉태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권한대행 체제로 들어가지만 국정 안정성, 정책판단 등 면에서 선출된 권력 공백을 메우는 데 한계가 따른다. 한편으론 현재 권력의 퇴거는 미래권력들 간의 다툼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단계로 이행되게 돼 있다. 여기에 개헌 이슈까지 얹혀지면 배가 산으로 갈지 강으로 갈지 알 수 없다.

난세에 영웅이 드러난다고 했다. 실제 여야를 통틀어 잠룡으로 불리는 대권주자급 인적 자원은 넘치고 찬다. 이들 중에 누군가가 나서서 탄핵열차의 속도 주행을 제어할 수 있다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이로운 일이다. 탄핵과 대통령 버티기 형국의 데드록(dead lock) 정국에서 국정위기 국면을 직시하면 실행 못 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대통령과의 세기적 담판이 전제돼야 한다. 형용모순이지만 단호하되 부드러운 리더십, 그곳에 출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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