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쟁취의 역사 다시금 상기 진실 위한 깊은 외침 외면 말길

헤겔이 주장한 정반합의 이론을 믿었던 때가 있었다. 정(正)을 무너트리는 반(反)이 있고, 이 둘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합(合)이라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정(正)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쟁투를 무수히 반복해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그의 말, 역사는 이런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을 믿던 날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말에 대한 믿음이 이상주의자의 소산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주의자의 그저 그런 넋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한평생 글만을 파먹는 흉내를 내며 살아 온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헤겔의 말을 들척이는 것은, 믿었던 그의 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와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세상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하는 의문 앞에서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주뼛거린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되돌아가지도 않은 채로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우리네 세상의 물결도 한 자리에 고여 아옹다옹 거리는 것만 같다. 그 웅성거림을 듣고 있자니, 헤겔의 이론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던 조간신문을 덮는다.

작금의 불안정한 사회적 상황에 철학을 운운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속 편한 인사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어둠 사이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진실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철학을 논한다는 것이, 그들의 숭고한 행위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모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군다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 반짝이는 촛불들은,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의 사실관계를 떠나 촛불들의 장엄한 풍경에 일종의 경외를 느끼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어떤 이름으로, 어떤 용어로 저 촛불들을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저 촛불들을 꺼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매워지는 겨울바람 앞에서 나는 다시 무력해지고야 만다. 희망적인 글을 적고,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안식이라도 주는 것이 지면을 허락받은 자의 도리이건만, 불편한 속내만을 늘어놓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좀 더 나은 모양으로 바뀌어 가리라는 헤겔의 말을 복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헤겔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된 지금에 와서, 굳이 그의 말을 늘어놓는 까닭은 그럼에도 그의 말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저 촛불들이 한없는 희망의 징표로써 길하게 빛나고 있는 때문이다.

진실이 우선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언제나 사람들을 추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 평소에는 잘 티도 나지 않는 그 가치들을 지키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야 할 사람들은 언제나 당당하다. 그들은 모인 군중들의 숫자에 대해서도 폄하하려는 작태를 보이기도 한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거대한 증오들이 태산을 이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숫자놀이를 들먹이는 것은, 그들이 그 많은 촛불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반응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의혹은 많으나, 속 시원히 풀리는 것은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품고 있는 의문이 합리적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오만으로 가득 찬 그들은 촛불을 보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자신이 믿는 곳만을 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을 과신한다. 동시에 그 과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촛불은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고 큰 불빛이 되어 더 환하게 밝혀진다. 다시 켜지고 꺼지지 않는다. 무기를 들지 않은 손이 품은 분노는 무기를 든 손이 내뿜는 적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

헤겔의 주장을 다시 헤아려 본다. 오만한 확신이 아니라, 쟁취로서의 역사를 말이다. 쟁취라는 말이 폭력적이라면, 연대 혹은 함께 라는 말로 대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헤겔의 시대에는 무수한 전쟁과 폭력이 있었지만, 지금 여기엔 없다. 촛불을 든 손엔 진실을 요구하는 깊은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촛불들은 알고자 하는 사실들을 밝혀낼 것이고 지키고자 하는 것을 끝내 지켜낼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누군가의 냉소가 되지 않는 세상을 열어젖힐 것이다. 막연하게 내 뱉는 긍정적인 전망은 무책임하나, 광장을 뒤덮는 촛불의 물결은 실재적 희망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문권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