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봤자 배신" 무력감 "마음속 감정 컨트롤 중요

임우영 건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우영 건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들의 감정은 복잡하다. 분노, 화, 자괴감, 수치심 등의 감정이 범벅 돼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막막 하기만 하다. 다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라는 말을 되 뇌이며, 한탄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특히 청년들의 마음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학생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학사관리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그 동안 쌓여 있던 울분들이 폭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분노` 그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필자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와 중반은 우리나라에서는 호황기였다. 기회의 균등과 노력에 따른 결과의 보상이라는 인생 공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학원, 과외 등을 통해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서 라도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고, 설령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인해,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활이라는 게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를 위한 또 다른 새로운 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이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되겠지. 그리고 그 노력을 지켜주는 공정한 룰 그리고 적법한 보상이 있을 거야`라는 최소한의 어떤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선 실세 모친의 힘을 입어 명문대 입학과 더불어 학점 취득을 이뤄낸 `특혜`의 과정을 지켜본 우리의 청년들은 충격과 절망 그리고 본인들의 노력에 대한 허탈감을 느꼈으며, 가뜩이나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 소득과 교육 수준이 대물림 되는 세상에 대한 쌓여있던 울분까지 합쳐져서 분노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로 인해 학생들에게 `내 노력이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과거 기존의 권력형 비리들은 어쩌면 대학생 본인들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유라씨 일을 보면서 학생들은 마치 본인들의 일처럼 다가오며, 그리고 본인들의 처한 현실과 맞물려서 더욱 아픔이 가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유라씨가 본인의 SNS에 올렸었다는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원망하라"는 글이 알려지면서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기회의 균등이 줄어든 현실에서, 노력을 해도 결과가 보장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노력은 그저 헛된 수고 심지어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결과를 거둔 사람이 갈채를 받는 현실에서, 우리 기성세대들이 줄곧 청년에게 요구하던 `노력`을 이제 계속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른 환경에 태어난다. 국가와 그리고 기성세대가 그러한 다른 환경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는 많은 차별들을 막아내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조장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차별을 국가 시스템이 오히려 방조 및 조장함으로써 발생한 이 사회적 불신을 이제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일련의 일들이 잘 해결 돼, 국민 마음속에 행여나 남을 수 있는 학습된 무력감, 그리고 그런 감정의 전이로 인한 무기력한 사회로 번져나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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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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