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지음·너머북스·560쪽·2만9000원

선한 지식인이 왜 나쁜 정치를 할까? 이 물음은 과거 그리고 현재, 미래까지 지속될 궁금증이다.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날 때마다 품게 되는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과거를 현재를 보는 거울로 삼으면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하게 되는지에 대해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선하디 선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그들이 정치라는 범주에 들어서면 왜 나빠지는지에 대해 한꺼풀 베일을 벗겨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학진흥원 연구원의 이정철 박사는 지난 2010년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이라는 책을 낸 후 한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 마련을 위한 고민에 빠졌던 것. 이 박사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과거를 탐닉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나름의 적절한 답을 찾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 박사의 신작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이다.

이 박사의 저서는 조선 선조 대를 통해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에 대해 고찰한다. 선조 8년인 지난 1575년 발생한 동서분당. 이렇게 시작된 당쟁은 정치적 사건들로 끝없이 변주되다가 선조 23년 기축옥사로 파국을 맞는다. 책은 이 과정과 인물들에 밀착해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드러낸다. 크게는 이이와 선조의 행적을 중심으로 살피고, 200여 명이 넘는 관련 인물의 동선을 드러낸다.

이처럼 책은 조선 선조시대의 당쟁을 바탕으로 나쁜 정치에 대한 얘기를 풀어낸다. 당쟁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화됐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박사는 당쟁의 시작에 초점을 맞춰 나쁜 정치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선조시대를 바탕으로 풀어낸 얘기·배경을 요약하면 내용은 이렇다. 정치적 이상은 물론 도덕적 소양까지 갖춘 이들이 중앙정계에 진출을 하고, 이들은 조선 초기 개국공신이나 훈구 공신들과 대립 구도를 만들어 가게 된다. 이후 사화가 잇따르지만 결국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도덕적 소양을 갖춘 이들의 시각이 현실보다는 이상에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후 정치는 자신의 뜻과 다르면 나쁜 것으로 보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현실에 뿌리를 둔 이는 이이이다. 민생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이이는 시비의 대상이 되고, 이것이 동서분당 즉 당쟁으로 나타난다. 사림 개개인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당시 국왕인 선조의 목적은 권력 장악이었다. 이 때문에 선조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사림간 다툼을 부추긴다. 최종 지배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올인`한 것. 그렇기에 책에서 동-서 갈등·분열 속에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선조이다. 역설적으로 선조는 양 진영이 극단으로 치솟는 갈등의 상황에서 정국의 주도권자가 됐다. 특히 정여립의 난으로 촉발돼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기축옥사 과정에서 선조는 거의 완전하게 조정을 장악하고 관료들에게 거의 제한받지 않은 독재에 가까운 권력 구축에 성공했다.

선조는 서인과 동인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명망 있는 인물을 정치적으로 소비했다. 이이, 박순, 이산해, 류성룡, 정철, 성혼, 이원익, 노수신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용도가 다했다고 판단되면 버려졌다. 심지어 선조는 정여립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철에게 위관을 맡도록 강제했다. 이것이 가져올 당파적 갈등과 그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최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은 것. 그는 왕이라는 제도가 자신에게 제공한 것을 최대한 이용했고 또 누렸다. 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가능한 공적 이상(理想)의 정책적 구현에 무관심했다. 선조는 정치 상황 및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이처럼 선조에겐 정치적 힘과 책임은 별개의 개념이었다. 이 같은 태도는 향후 국정의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했다. 작금 벌어지는 정치적 현실처럼 말이다.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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