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사랑과 증오, 그 어디쯤의 당신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신념마저 무너지게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러한 물음에 반쯤 해답을 알려준다. 영화 `색, 계`의 내용은 이렇다. 1938년 홍콩, 친일파의 핵심 인물이자 정보부 대장인 이(양조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막 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접근하는 왕치아즈(탕웨이) 둘은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 같은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게 되지만 이의 상하이 발령으로 헤어지게 되고 암살 계획 또한 무산된다.

1941년 상하이, 다시 시작 된 암살계획으로 둘은 상하이에서 재회하게 된다. 경계를 푼 이, 그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왕치아즈 이들은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2007년 가장 뜨거운 화제작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색, 계`가 지난 9일 재개봉했다. 영화는 19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스파이가 돼야만 했던 여인과 그녀의 표적이 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로 `라이프 오브 파이`, `브로크백 마운틴`, `와호장룡` 등의 작품을 선보인 세계적 거장 이안 감독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코스모폴리탄으로 불렸던 1940년대 상하이를 그대로 재현해 한층 완성도를 높였다. 영어와 중국어 간판이 뒤섞인 182개의 상점이 즐비한 거리는 물론, 더욱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전차를 움직이는 전기선까지 만들어 냈다. 쇼핑과 여가를 즐기는 외국인들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여러 나라의 스파이들까지 활동하는 특별한 도시였던 만큼 제대로 그려낸 것. 최근 누적 700만 관객을 돌파한 `밀정`의 김지운 감독까지 영화 속 배경으로 참고하기 위해 영화를 챙겨보았다고 밝혀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와 함께 탕웨이와 그녀가 맡은 캐릭터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과 싱크로율 100%인 모습 또한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미술감독은 실제 스파이로 활동했던 `정핑루`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사진 속에서 모자, 바바리코트를 입고 커피숍에 앉아 있는 `정핑루`의 모습은 영화 속 탕웨이를 찍은 듯 의상부터 분위기까지 그대로 닮아 있던 것. 이렇듯 색, 계는 영화 속 배경부터 캐릭터까지 완벽하고 생생하게 구현해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여 한층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과 촬영상 2개 부문을 석권해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더불어 대만 최대 영화제인 금마장 영화제에서 또한 감독상, 최우수장편영화상을 비롯한 남우주연상, 신인상, 영화음악상, 의상디자인상, 각색상까지 7개 부문을 휩쓸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특히 단순히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아닌, 일제 식민지하의 1940년대 상하이를 제대로 그려내고 그 속에서 스파이가 되어야만 했던 여인과 그녀의 표적이 된 남자, 사랑과 표적의 경계에 선 치명적인 사랑을 이안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탕웨이와 양조위의 섬세한 연기로 완성해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특히 여주인공 탕웨이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오디션에서 발탁됐다. 그녀가 커피숍에서 나오는 장면은 마치 1942년 상하이로 돌아간 듯 그 시대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한다.

탕웨이는 발탁된 후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6개월 간 사격연습과 서예 등의 훈련을 진행하는 열정으로 또 한번 주위를 놀라게 만들었다. 반면 이안 감독은 양조위를 캐스팅하기 전, 그가 그동안 대부분 선하고 부드러운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조금 주저했다. 그러나 양조위는 동작, 목소리 톤을 바꾸고 광동어 대신 북경어를 사용하는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하고 서늘한 새로운 캐릭터로 완벽하게 몰입했다. 그렇게 노력이 모여 하나의 명작이 탄생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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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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