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비리 경계한 한비자 박 대통령 모두 내려놓고 야권은 국정수습 나서야

한비자가 경고한 그대로다. 그는 간신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8가지로 팔간(八奸)을 들었는 데 측근 비리를 경계한 게 두드러진다. 첫째가 동상(同床)이고, 재방(在旁)과 부형(父兄) 순이다. 박 대통령은 독신인 탓에 베갯머리송사 같은 사사로움에서 자유로웠고, 취임한 뒤 형제와 발걸음을 끊어 친인척을 스스로 차단했다. 하지만 재방의 늪을 피하지 못했다. 오랜 측근을 내치지 못하면서 비선실세 의혹인 `최순실 게이트`를 낳은 건 대통령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지난 2013년 중국의 유명 앵커에게 `人生在世, 只求心安理得就好了`라는 경구를 써준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루이청강에게 `살아가는 동안 마음 편하고 도리에 맞는 것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뒷날 루이청강이 간첩 혐의로 투옥되면서 새삼 이 글이 화제가 됐는 데 `중국철학사`를 즐겨 읽는다는 박 대통령에게 족쇄로 돌아왔으니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이 두 차례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검찰수사 수용 의지를 밝힌 건 만시지탄이다. 중국역사의 기원을 담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래서 군주는 가뭄이나 홍수가 들면 죄가 자신에게 있다는 조서(詔書)를 구체적으로 적어 반포했다. 실정(失政)에 대한 공개 반성문이자 사과문이었다. 사태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국회 추천 책임총리를 제안한 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부터다. `안보·경제` 이중 위기 속에 대한민국호(號)는 표류하고 있다. 당장 외치(外治)에 경보음이 울렸다.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태극기는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으로선 23년 만의 불참이다. 한미동맹 강화의 계기가 돼 온 미국 대선이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승리로 끝난 뒤 `대통령 축전 메시지-양국 정상간 통화-정상회담` 공식이 지켜질 지 의문시 되고 있다. 내치(內治)라고 다르지 않다. 정부는 힘이 빠져 정책 추진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충청권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 같은 현안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정치가 당파와 정파를 초월해 제 역할을 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합작한 당 태종 이세민과 위징을 보자. 당초 위징은 그가 모시던 태자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죽이라고 건의한 인물이다. 하지만 태종의 중용으로 국정 참여의 길이 열렸고,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골수 야당 역할을 하면서 태평성대의 공동 주역이 됐다. 고전 번역으로 잘 알려진 김원중 단국대 교수는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따르면 위징은 300차례나 간언했다. 태종은 둘의 관계를 제나라 환공과 관중 이상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했다"고 평가했다. 국가가 난파선이 된 상황인 만큼 청와대와 여야의 협치(協治)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이 유의해야 할 말이 있다. 맹자가 강조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로 이해하면 되겠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저마다 차별화된 메시지를 내놓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앞서 신중한 언사와 책임 있는 모습으로 국정을 수습할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걸까. 초강경 발언과 행보로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는 것만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마침내 야 3당 대표는 어제 책임총리제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공통 입장을 내놓았다. 12일엔 민중총궐기 집회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정치 보다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의 성공적 운영으로 수권 능력을 보여주는 게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이제 박 대통령은 더 내려놓을 게 있다면 다 내려놓고, 야권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라는 길 밖엔 없게 됐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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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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