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적 권한 부여된 한국 대통령제 국민 여론·의회 의견 수렴 등 외면 설득·타협하는 제도 개선 나서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표현으로 강력 부인했겠는가? 그런데 봉건시대만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는 자괴감으로 잠 못 이루는 국민이 많다. 그렇다면 봉건시대도 아닌데 이러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제도적으로는 대통령중심제이지만 실제는 아직도 `선출된 왕`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었다는 정당성에 매몰된 나머지 국회와 국민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각책임제하의 `박근혜 총리`였다면 이러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에게 우월적 권한을 부여하는 대통령중심제 제도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권력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전형적인 대통령제가 아니고 위기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다는 명분하에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대통령에게 우월적 권한을 부여하는 대통령중심제이다. 대통령의 원래 이름은 `프레지던트(president)`다. 그 어원은 `회의를 주재하다`는 뜻의 `preside`에서 비롯됐는데 원래 `먼저(pre) 와서 앉아 있는(side=sit)` 사람이란 의미다. 대통령제의 선구인 미국이 이 용어를 붙인 이유는 왕과 귀족이 평민 위에 군림하던 계급사회가 아닌 동등한 자격의 시민들이 만든 국가의 대표라는 민주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대통령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은 연방국가다. 주가 모여서 연방을 형성한 것이다. 교육·복지·치안 등 일반적인 권한은 주가 보유하고 있다. 연방은 주의 고유권한이 아닌 것 중에서 주로 국방·외교 등과 주간통상에 관한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따라서 연방대통령의 권한은 태생적으로 제한적이다.

둘째, 이렇게 태생적으로 제한적인 연방대통령의 권한도 다시 한 번 의회의 견제를 철저히 받는다. 장관은 물론이고 차관과 차관보, 연방판사, 대사 등 약 1000여 명의 고위공무원은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이 가능하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의회를 무시하고 승자독식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단 한명의 상원의원이 반대해 대사 임명이 지연되고 좌절되는 경우도 있다.

셋째,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는 법률안제출권조차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고자 의회에 자신의 정책을 소상히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설득한다. 대통령 직무의 대부분이 의회와의 소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와 미국은 이름만 유사할 뿐 대통령제의 형성 기반과 제도 운영이 현저히 다르다.

더욱이 선진국 클럽인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미국, 멕시코, 칠레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내객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의 아류인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저개발국가이거나 독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가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설득과 타협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의사당 제일 앞자리에 서서 직접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질의를 받고 답변하는 것이 권한이자 책무이다. 경제 및 사회 분야의 선진국 지표인 OECD 기준을 모델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독 정치체제는 OECD 대다수인 내각책임제를 따르지 않고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남북분단의 특수상황이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논리라면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당연히 대통령중심제 아니 왕정을 채택했어야 할 것 아닌가? 이스라엘의 안보상황이 우리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부의 설득과 타협 없이 외부의 적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통령단임제의 폐단을 고치고자 대통령중심제를 그대로 놔두고 대통령의 임기만을 조정하는 미봉책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비극을 되풀이할 뿐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설득과 타협이라는 소통을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내각책임제를 생각할 때이다.

성선제 고려대 초빙교수·미국 변호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