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은 분노·슬픔마저 통제 감정 표현도 조심스럽던 시절 자유롭게 표출하는 시대 기대

젊은 아버지는 물 좋은 논 세 마지기가 `평생소원`이라 하셨다.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비록 천수답이었으나 아버지께 논 세 마지기가 생겼다. `세 마지기`에 감격한 나는 그 논만 보면 괜히 마음이 일렁거렸다. 어느 날 앞산 자락에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논 `세 마지기`는 `두 마지기`가 되었다. 나도 수용된 땅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알 만한 나이였다. 고속도로는 영호남 지역감정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 이제 우리 고향도 발전할 거라고 했다.

고속도로 개통식이 다가오자 학생들은 수업 대신 모내기에 동원되었고, 고향 마을에는 면직원인지 하는 사람이 상주하면서 보리를 걷고 모내기를 하라고 성화를 해댔다. 대통령 행렬이 지날 때 온 들판이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주말, 나는 아버지와 낯선 이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지켜보는 가운데 가랑비를 맞으며 보릿단을 걷었다. 분노와 모멸감으로 바들거리는 내게 아버지께선 `그 사람도 딱하지 않냐. 보름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라고 하셨다. 폭발 직전의 내 감정이 아버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뭔가 억울했지만 아버지를 불안하게 할봐 마음 깊숙이 감정을 눌러두었다.

개통식 날, 읍내 모든 학생들은 그늘 한 점 없는 고속도로 위에서 몇 시간씩 대통령 행렬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손을 흔드는 아주 잠깐 사이에 행렬은 지나갔다. 나는 내내 한여름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담임선생님을 째려보았고, 종례시간에는 반장 역할을 내팽개치고 엎으려 시위를 했다.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숙제도 없고 백일장도 아닌데, 발표할 기회도 없는데, `순전히 자발적으로` 시를 썼다. 아무리 봐도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는 아버지의 삶에 발전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할아버지께선 잠을 설치는 일이 많으시고, 좋아하던 솔숲도 사라져 내겐 슬픔이 더 많아졌다고 썼다.

몇 개월 후 나는 고3이 되었고, 학교에 새로 부임한 국어선생님께서 교지 발간을 추진하셨다. 나름 학교의 문재(文才)였던 내가 창간호 서시(序詩)를 써야 하지 않겠냐고, 고3이라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니 일기장에 써 놓은 시가 있으면 가져오라 하셨다. 자발적으로 쓴, 유일한 미발표작이었던 그 시를 찾아 제출했고, 교감선생님께 불려갔다. 내 시 위에는 빨간색, 파란색 줄이 어지러웠고, 교무실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나는 왜 그 시가 교지에 실리기 곤란한 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상황을 이해했다. `이 시는 일기장에 잘 넣어두었다가 우리나라가 미국 같은 사회가 되면 그 때 발표하라`는 말씀도, `순수한 감정을 읊은 시를 다시 쓰면 써 오면 좋겠다`는 말씀도 잘 알아들었다. 아주 영악했거나 모자랐을 나는 내 마음 다칠까봐 염려하는 선생님들께 죄송해 하면서 `아름다운 눈물`을 자아내는 `순수` 시를 써냈다. 발표된 시는 꽤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셈이고,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후 나는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생겨날 때마다 불편해하면서 그 `순수`하지 못한 감정들을 `정화`하고 `승화`하려고 억지를 부렸다. 결국 내 안에 들끓는 그 `불순한 감정들`을 검열하느라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며 각자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스물 몇 해의 짧은 삶에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참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힘들고 고통스런 순간들은 무시당하고 억압된, 드러내지 못한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 때 자기 안에 들끓던 감정들을 확인하고, 뒤늦게나마 자신과 주변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며 펑펑 울고 나자 학생들의 표정은 훨씬 해맑고 말랑말랑해졌다. 열여덟 살의 내게도 칭찬이나 상장 대신, 그 많은 염려와 보살핌 대신 내 안의 감정, 분노와 슬픔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이라고 인정해주는 한마디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혹시 그 때 `정말 화가 나겠다` `화 낼만하다` 혹은 `화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면 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더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