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영화 중 `걷기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선천성 멀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녀다. 소녀는 심지어 경운기를 타면서도 지독한 멀미증을 이겨내지 못해 집에서 도보로 두 시간 거리에 달하는 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등교한다. 고작 멀미 때문에 탈 것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소녀. 평생을 이렇게 무작정 걷기만 해야 하는 걸까. 의학용어로는 그럴듯하게 `가속도병`, `동요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병 아닌 병, 멀미에 대해 김도형 을지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의 도움으로 알아본다.

◇멀미 가장 큰 원인은 `감각 불일치`=우리가 보행을 배울 때는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눈, 귀 등의 감각기관계의 반응이 머릿속에 기억된다. 나중에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생기면 기억된 정보를 갖고 감각기관들이 미리 예측을 해 준비하고 반응한다. 그러나 차를 탄 상태에서는 이동에 따른 근육의 움직임이 없거나, 기존의 기억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므로 감각과 기억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움직임과는 다른 자동차, 배, 비행기 등을 처음 탈 경우 대부분 멀미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배를 오래 타던 사람 가운데는 배의 흔들림에 완전히 적응돼, 오히려 육지에 내렸을 때 멀미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땅 멀미`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같은 이치다.

멀미와 관계되는 감각기관들 중에서는 특히 귀가 중요하다.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뿐만 아니라 신체 균형을 인지하는 세반고리관, 타원낭, 소낭과 전정신경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통틀어 `전정기관`이라고 한다. 차의 발진이나 정지 등과 같은 격한 움직임으로 전정기관이 강하게 자극을 받으면 어지러움이 심해지면서 속이 더 메스꺼워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지럼증은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두려움·피로감 같은 정신적인 요소도 전정기관에 더 민감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가솔린이나 배기가스 냄새를 맡거나 멀미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멀미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또한 대부분 멀미를 느낄 때 단순히 어지럼증뿐 아니라 오심, 구토, 창백, 식은땀, 입마름, 심박수 및 혈압 변화, 위장관 운동 증가 혹은 감소 등과 같은 자율신경 교란 증상이나 졸림, 두통을 함께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멀미를 전정기관의 이상으로 인해 생긴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오히려 양측 전정기관에 고장이 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양측 전정신경 절제술 받은 동물의 경우 멀미를 하지 않는다. 멀미는 병이 있거나 몸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전정기관의 기능에 따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치료보다는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큰 치료법=멀미 예방을 위해서는 배를 타거나 차를 탈 때 흔들림이 적으면서 창문을 통해 차의 흔들림을 예측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는 게 좋다. 예를 들면 버스나 자동차는 앞좌석, 비행기는 주날개 위쪽 좌석, 배는 가운데가 좋다. 복도 쪽이나 폐쇄된 공간보다는 창문 주변이 좋으며 벨트나 단추 등 신체에 압박을 주는 것은 느슨하게 풀어주고 심호흡을 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바라보면 도움이 된다.

또 차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등을 보인 채 앉는 것보다 앞을 향해 앉는 것이 좋다. 차를 타기 전에는 과식과 술을 삼가야 하며, 차 안에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등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잠을 자면 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면을 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멀미가 아주 심해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동일한 운전사가 운전하는 동일한 차량, 그리고 전방이 잘 보이는 일정한 자리에 앉는다면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이 될 것이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멀미약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멀미약은 전정기관의 기능을 둔화시켜 멀미를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먹는 멀미약은 승차 전 30분 전에 복용해야 하고, 붙이는 멀미약은 최소 출발 4시간 전에 붙여야 한다. 붙이는 멀미약은 만 7세 이하 어린이나 임신부, 녹내장 혹은 배뇨장애, 전립선 비대증이 있는 사람에게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이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멀미약이 단지 예방 효과만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뒤늦게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으며, 차에서 내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 그저 편히 드러누워 차가운 공기를 쏘이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최선의 응급처치법이다.

또한 멀미가 아닌 다른 질환이 있음에도 이를 멀미라고 생각하고 단순하게 넘겨버릴 수 있다. 운송수단을 타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멀미와 비슷한 어지럼을 느낄 때는 중요한 질병의 신호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전희진 기자

◇멀미란

멀미란자동차 또는 항공기 등에 탔을 때 구토증이나 메스꺼움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가속도병 ·동요병(動搖病)이라고도 한다. 멀미는 귀의 내이 부분과 연관이 있는데, 균형이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한다. 멀미에는 정신적인 영향이 많이 작용하므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기차 등을 탈 때는 되도록 동요가 적은 자리를 잡고, 창문을 열고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식사는 소화가 잘 되는 것으로 하며, 출발 2시간 전에 식사를 마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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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김도형 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
도움말=김도형 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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