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콧 데릭슨 감독

닥터(Doctor). 우리나라 말로는 보통 선생님, 혹은 박사님이라고 해석된다. 흔히 한 가지 분야에 능통하거나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닥터(박사)라 불린다.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렇다. 천재라 불릴 정도로 실력 좋은 외과 선생님인데 팝에도 능통하다. 머리도 좋고 화술도 좋다.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했다. 외과의사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더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닥터라 불렸을 만한 남자다.

허나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이 닥터라는 직함은 무겁다. 의료계라면 더욱 그럴테다. 의료계에서의 닥터는 결국 의사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이다. 스트레인지 역시 그러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단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탓에 조금 건방지고 방탕할 뿐이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가 더 이상 메스를 쥐지 못하게 됐을 때, 그럼에도 그는 닥터였다. 본인이 어디까지나 사람을 구하는 의사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저 사람을 구하는 방법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신들린 수술실력 대신 신급의 능력을 갖춘 마법사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그 마법으로 조금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됐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천재이지만 다소 건방진 외과의사 스트레인지가 불의의 사고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트레인지는 명품시계와 최고급 수퍼카를 타고 다닐 정도로 잘나가던 외과의사였지만, 사고를 당하면서 자신의 가장 큰 무기였던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되고야 만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그의 두 손은 전과 같지 않다. 절망은 그를 좀먹는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동료 의사 크리스틴(레이첼 맥아담스)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다. 거의 반쯤 포기했을 때였을까, 그는 신비한 힘으로 하반신 마비를 고친 남자의 소식을 듣게 된다.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정신`을 강화하니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단다. 그는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인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영화화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벤저스 멤버들이 하나둘씩 나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구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세계에서 활약하던 영웅들이 아니던가.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스트레인지는 (물론 지구에 살고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가진 마법사, `수프림 소서러`다. 코믹스에서도 어벤저스 멤버로 활약하지만 물질이 아닌 초자연적인 세계, 즉 정신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영웅인 만큼 기존 영웅들과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블은 영리했다. 뛰어난 영상과 감각적인 연출을 동원해 이 작품이 초자연적인 세계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계기로 만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 자체를 재미있게 만들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기존 마블 영화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마블코믹스 원작 영화들은 어떤 작품이 됐든 `평타`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 수백만의 관객들을 끌어모을 정도. 허나 기존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다소 뻔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시점이기에 다소 루즈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 확장에 목말라 있을 타이밍인 지금, 마블은 닥터를 스크린으로 끌어들이며 보다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게 됐다.

확장된 세계관은 비단 내용적인 측면만 바꾼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닥터가 단순히 `힘`을 기반으로 하는 캐릭터가 아닌 만큼, 그의 능력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표현하는 지의 여부다. 흥미롭게도 마블은 닥터를 단순히 부수는 캐릭터로 만들지 않았다. 마블은 그의 초차원적인 능력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정도의 3D 영상으로 구축해냈다.

영화 자체는 꽤 잘 만들어졌다. 관건은 이 강력한 영웅을 기존 영웅들과 어떻게 섞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마블인 만큼 차기작도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마블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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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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