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홍수속 글쓰기 교육 부족 독서로 창의성·인문지식 키워야

학생 지도과정에서 종종 리포트라 하는 숙제를 내줄 때가 있다. 전공과 관련된 간단한 숙제도 있고, 좀 더 짜임새 있게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연구논문도 이에 해당된다. 때로는 사회의 일선현장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등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숙제 아닌 숙제를 받아볼 때도 있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 분명 우리말과 글로 된 그것임에도 편안히 읽히기보다는 불편한 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모르는 단어도 없고, 난해한 어휘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글이지만 읽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게 하는 불편함이다. 뜻을 파악하려면 문장의 첫머리로 돌아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만 하는 글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인내력을 갖고 곰곰이 읽다 보면 그 의도를 포착할 수는 있으나 문장을 읽어가는 순간순간의 불편함은 숨길 수 없다.

한글 창제 기념일이 바로 얼마 전이다. 독특한 독창성과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는 우리 한글은 인류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문자로서 세계적으로 그 평판이 자자하다. 이리도 좋은 문자를 가지고 그를 응용하여 쓴 글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는 건 어떨까.

학창시절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이 스친다. 주어와 동사로 된 1형식 문장부터 마지막 5형식의 문장구조를 익히느라 머리를 싸맨 기억이 생생하다. 영어문장은 이러한 기본적인 형식을 벗어나서는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장을 이루는 기본적인 형식에 수식어 등의 살을 붙여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의 문장도 사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의 숙제(글)를 보면 기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리고 작성한 것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띈다. 문장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기본적인 구조를 어기며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낸 문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에 그렇다. 글의 호오(好惡)를 떠나 앞, 뒤 문맥이 맞지 않아 이를 해독하려면 몇 번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고행이 따른다. 예컨대 동사의 주체인 주어가 무엇인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문장이 허다하다.

흔히 현대사회를 이미지의 홍수시대라 한다. 덧붙여 글의 홍수시대라 칭하고 싶다. 전문적인 글쟁이의 글에서 온라인상에 넘쳐나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글이 넘치는 시대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쓰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지켜본 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회의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 역시 돌이켜보면 문답식교육체제에서 효율적인 글쓰기교육을 받아 본 기억이 희미하다. 어렵게 느껴지는 글쓰기도 독서가 뒷받침된다면 두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효율적인 글쓰기교육의 시발점도 독서를 권면하는 데에서 삼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그리된다면 자연스레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인문학의 르네상스시대라 할 만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독서는 인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뿐 아니라, 험난한 경쟁사회에서 생존을 기댈 수 있는 구명조끼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이에 창조적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예술가부터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상의 전환법을 인문학에서 찾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정답은 바로 독서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문학은 수많은 개인의 의견, 지식, 세계관을 펼쳐 놓은 책에서 비롯되기에 그러하다.

예능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머뭇거림 없이 독서를 권한다. 예술작품의 근간도 따져보면 언어와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지식을 전파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시키는 교육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서 참교육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이다.

창의성이 없으면 도태되는 시대이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데에도,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창의성이 결여되면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데 책 한권이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호 목원대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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