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도움은 나약한 사람 만들 우려 물질보다 정신적 가난은 고치기 어려워 청년 일자리·복지지원 신중하게 접근을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꽤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만나다가 친한 친구처럼 발전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필자도 이런 인연이 그럭저럭 적지는 않았다. 그 중에 미국인 신부인 서울 S대학 교수와 꽤 편하고 친한 사이가 됐다. 하루는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앞가슴에 타박상이 있었다. 심각한 것은 아닌데 궁금해서 "신부도 싸움을 하냐"고 농담으로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그럼 나 싸움 잘해요" 한다. 물론 신부들 중에는 술을 즐기고 많이 마시는 분들도 있어서 술먹다가 싸웠냐 했더니 씩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실은 소위 말하는 말썽꾸러기 소년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워낙 불우한 가정의 소년이고 가난해서 자꾸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년과 태권도 하다가 맞아서 생긴 타박상이라고 하며 껄껄 웃는다. 그래서 아니 그 소년과 태권도는 왜 하느냐 했더니 사실 그 소년을 돕고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뭔가 물론 금전적으로도 도와줘야 했는데, 그냥 주면 안 되니까 그 소년과 태권도를 하게 됐단다.

그 소년을 만나서 잘 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태권도라고 하길래 그에게 태권도 레슨을 받기로 했단다. 따라서 태권도 레슨비로 1회 3만 원씩 한 달에 30만-40만 원씩 지불했단다. 공짜로 도움을 주거나 특히 금전적 도움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란다. 그러다 보니 60이 넘은 미국인 노신부, 교수가 팔자에 없는 태권도 레슨을 받는다는 것이다. 뭔가 남달라서 신부가 됐겠지만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됐고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젊을 때 미국에서 전문의 과정을 할 때다. 이때 도서관을 청소하는 수잔이라는 60이 좀 넘어 보이는 여자청소부가 있었다. 그때 "수잔!, 일 안 해도 복지(welfare)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고생하시냐"고 했더니 정색하면서 자기는 스스로 일해서 살지 정부에서 주는 공짜는 절대로 사양이란다. 이것이 자기의 자존심이라며 청소부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 읽은 글 중 하나를 더 인용하자. 오랜 옛날 왕이 나라의 현자들을 모아 놓고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익혀 두어야 할 귀감이 될 글을 써서 올려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론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에는 가난한 나라라서 생각도 꿈도 못 꿨던 `복지정책`이 펼쳐지는 사회가 되었다. 흔히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로 불리며 양분되고 학자들도 정치인도 정당도 사회단체도 선택이냐 보편이냐를 두고 서로 아웅다웅하는 세상이 됐다. 문제는 바로 세금이 어떻게 쓰이느냐는 것인데 실제로 세금을 내는 국민은 안중에 없고 국민이 거의 절반도 참여 안 하는 정치권, 국회, 정당, 사회단체 등이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다. 모 지방자치단체장은 몇 백만 원씩 청년들에게 무조건 준다고 하고 또 큰 도시 시장도 한 달에 50만 원씩 6개월을 청년들에게 무조건 준다고 난리다. 하물며 시청 청사 한쪽에 현수막까지 쳐놓고 홍보한다.

이들의 행위가 정당하든 아니든 필자는 수긍도 안 되고 오히려 분노마저 느낀다. 이 사람들은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지방의회를 통과한 예산이니까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시민에게, 지방은 지방주민에게 물어봐라. 사실 시장·시의원 등이 그 지역민의 몇 %가 지지해서 뽑혔는지? 투표율이 60-70% 되어도 지지자는 그 지역 전체 주민의 반이 안 된다.

민주주의라는 명목아래 투표를 통해서 선거직 공무원(대통령, 국회의원, 각종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을 뽑다 보니 `내가 투표로 당선됐으니 내 맘대로`라고 생각하는 데서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 같다. 오죽하면 과거에 차등투표, 지역전체 주민의 과반수 이상의 득표자 당선 등의 제도가 있었을까?

더구나 청년 일자리 창출! 필요하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는 철학을 심어줘야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영혼이 썩는 정신적 가난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가면서 물질적 가난은 해결되지만 정신적 가난은 잘 고쳐지지 않고 더욱 더 물질적 가난을 악화시키지 않을까? 청년 일자리 창출! 좋다. 그러나 선거직(選擧職)들의 개인적인 도그마에 빠져 잘못된 정책으로 귀중한 청년들을 영혼이 썩는 정신적 가난뱅이로 만들지 말자.

선병원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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