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부정부패 발본색원 취지 공감 자칫하면 전 국민이 감시 대상 될수도 좋은 법도 현실을 반영 못하면 부작용

요즘 새삼스럽게 놀란 게 있다. 그건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두려워하면서 법의 정확한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걸까? 원제안자는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공무원들이 당당하게 부정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 또는 근거를 제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정 과정에서 의도와 목적이 훼손될 경우 그 법은 결과적으로 많은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예로 1919년에 제정되어 금주법으로 알려진 미국의 헌법 수정조항 18조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입안한 법률인 `볼스테드 법` 사이에 벌어진 틈이 어떤 사회적 문제들을 만들어냈는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헌법 수정조항 18조는 `취할 수 있는 음료(intoxicating liquor)`를 제조, 유통, 판매, 수출입을 금지했을 뿐이다. 즉 이 조항의 주목적은 주류 제조업체, 유통업체, 술집이 야기한 많은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었지, 개인이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술을 못 먹게 해서 금주법이 아니라 술의 제조, 유통, 판매와 관계되는 업체들의 행위를 금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해결방안을 놓고 흔히 온건한 사람들과 과격한 사람들이 갈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타협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헌법 수정조항을 통과시킬 때 주된 논쟁은 어떤 종류의 술까지 금지할 것인가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시행 법률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의회에서 과격세력과 온건세력이, 다시 말해 금주세력과 절주세력이 타협을 했던 것이다. 초점은 `취할 수 있는 음료`인 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온건세력은 이 용어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 따위의 증류주로 국한하여 수정조항 18조를 시행하는 법률을 만들 수 있다고 오판했다. 그러나 의회를 장악했던 금주론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당시 법사위원회 의원장이던 앤드류 볼스테드를 비롯한 과격한 의원들은 이 용어를 `0.5% 이상의 알코올을 포함하는 음료`로 정의하는 금주법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이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회는 또다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연적으로 발효된 과일조차도 0.5% 이상의 알코올 성분을 지닐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종류의 알코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계율을 실천하는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법은 세속사회인 미국에서 어떻게 집행되었을까? 많은 시민들은 알게 모르게 이 법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지 않던 젊은 여성층까지 이런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도시지역에서 그러했다. 비밀리에 만든 술집들이 성행하고, 캐나다 국경을 건너, 또는 바다를 건너 온갖 종류의 술들이 밀수되었다. 덕분에 알 카포네를 우두머리로 하는 범죄 집단이 조직화되어 암시장에서 떼돈을 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보란 듯이 헌법을 무시했다. 좋은 목적을 위해 만든 법이 광범위한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동기가 `고상`한들 현실과 유리된 법의 제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영란법의 의도는 분명 훌륭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법안 제정 과정에서 법의 집행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많은 여지를 만들어놓았다. 직무 관련 조항과 공직유관단체를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현재 공직자 및 공직자 배우자로 분류된 사람들을 무려 4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거의 전 국민이 해당된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만든 법이다. 그러나 자칫하다가는 전 국민을 감시대상으로 만들기 십상이고, 국민들은 자기검열을 통해 부정청탁 해당 여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좋은 의도로 만든 법이지만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부디 엄청난 수의 피라미들 대신에 대어들을 낚는 결과를 낳기 바란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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