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갑질`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구태(舊態) 사례로 꼽을 만큼 사회 곳곳에 `을`위에 군림하려는 `갑`이 득실대고 있다. `갑(甲)`은 유교 경전인 주역에서 다루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10간(干)의 첫 자다. 십간에는 하늘이 변하는 이치가 담겨 있어 10천간(天干)이라고도 한다. 즉 10간은 상하 서열이 아닌 천지에도 열 가지 기운이 있음을 뜻하는 동등한 개념이다.

계약법에서는 계약 당사자를 단순하게 순서대로 지칭하는 것으로 갑과 을을 사용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갑과 을 사이에 상하관계가 분명해지며 나아가 갑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났다. 실제 국립국어원이 지난 5일 개통한 온라인 국어사전 `우리말샘`에서 `갑질`을 신조어로 등록했다. 우리말샘은 위키피디아처럼 사용자가 뜻풀이·발음·방언·용례 등 어휘정보를 더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개방형 국어사전이다. 우리말샘에서는 상대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상대를 호령하거나 자신의 방침에 따르게 하는 짓을 갑질이라고 규정했다. 때문에 요즘의 갑을 관계는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와 약자와의 관계, 즉 계층의 관계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다.

몇 년 전부터 `갑질`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국민의 공분을 샀지만 갑질, 갑을 관계에 따라붙는 부정적 의미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공권력이 나서 갑질 청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국이다.

충남경찰도 지난달부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횡포`의 근절을 위해 특별 단속에 나섰다. 수사·형사·보안·여청과장 및 각 경찰서 수사·형사·여청·정보보안과장 등이 힘을 보태, 오는 12월 9일까지 △권력형 토착비리 △계약·납품 등 거래관계 부정부패 △직장·단체 내 직권 이용 부조리 △악덕소비자의 금품갈취 등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지난 한 달간 공무원이 공사비를 횡령하거나 교수가 그림을 강매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횡포` 사범을 대거 적발했다. 이 기간 54명을 붙잡고 이 중 8명을 구속했다.

우리 사회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자리 잡아 간다면 이처럼 공권력을 강화하지 않더라도 `갑을`에 따라붙는 부정적인 의미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따스한 배려심이 모아져 `갑을`이 애초 의미대로 10간에만 사용되길 희망해본다. 맹태훈 충남취재본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